[me] '비열한 거리' 조인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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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진=안성식 기자

이제 연상의 연인에게 응석 부리거나 사랑을 더 달라고 울며 보채는 철부지 귀공자 조인성은 당분간 잊어도 좋을 듯하다. 한 영화잡지에 의해 "당장 연기를 그만두었으면 하는, 최악의 배우"(2003 '남남북녀')로 꼽혔던 수모도 너끈히 설욕할 것 같다.

그의 새 영화 '비열한 거리'(유하 감독)는 영화배우 조인성(26)의 출발과 가능성을 알리는 작품이다. 성공과 몰락을 체험하는 조폭 중간보스로 출연한 영화는 그의 도회적이고 여린 외모 뒤에 감춰진 폭력성과 남성성을 끄집어낸다. 정형화되거나 미화되지 않은 '진짜 인간 조폭'이 있는 영화이자 이제는 당당히 배우로 호명될 만한 그의 새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비열한 거리'는 유 감독의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어 우리 사회의 조폭성을 탐구한다. 유 감독 영화답게 스타일의 과장 없이 탄탄한 이야기가 극을 끌고 간다. "내 안의 남성성.강렬함을 끌어내고 싶어 조폭영화를 골랐다"는 조인성은 겉멋을 뺀 연기로, 욕망과 배신의 드라마를 안정적으로 끌어 간다. 한눈에 도드라질 정도로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연기는 아니지만 '튀지 않는 것'은 오히려 감독의 요구였다.

감독은 "열연하지 마라"고 주문했고 조인성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멜로적 감정과잉 상태에서 벗어나 "생활대사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는" 기본으로 돌아갔다. 캐릭터에 빠져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해 시간 순으로 한참 찍고 난 후 감정이 무르익으면 다시 앞 신으로 돌아가 재촬영하는 강행군이 계속 반복됐다.

액션영화인 만큼 육체적 고통이 따른 것은 당연한 일.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익숙히 봐온 폼나는 액션이 아닌 진짜배기 '막액션'이라 더욱 어려움이 컸다. 맨몸이 마구 부딪치고 거기서 진짜 리얼한 분노가 치솟아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액션이었다. 액션의 합을 기억하면서 감정선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친구'의 장동건,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황정민, '사생결단'의 류승범. 충무로에 내로라하는 남자배우들이 한 번씩 도전하는 조폭연기에 대한 기대감은 어땠을까.

"멋있는 조폭이 아니라 진짜 조폭처럼 보여야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실제 조폭들을 만나 말투.행동거지 등을 관찰했지만 외양이 비슷하다고 진짜 조폭은 아니다. 무수한 조폭영화를 참조했지만 나만의 조폭 캐릭터를 찾아내야 했다. 오래 고민했고, 연예인이 내 직업인 것처럼 조폭도 내 직업이라고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그 다음엔 내 안의 폭력성이 절로 치솟게 했다."

"잘생긴 눈이지만 비열함도 가지고 있는, 반전이 있는 눈"에 끌려 조인성을 캐스팅한 감독은 욕도 잘 못하고 싸움도 잘 못하는 그를 위해 "평소에 나쁜 생각 많이 해라. 격투기를 많이 보라"는 등의 주문을 했다. 전라도 사투리 교사도 유 감독이었다. "처음엔 사투리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더니, 그 다음엔 '한번 해 봐라'하고 '그것도 못하는구나''그 느낌 모르는구나', 이런 식으로 점점 약을 올렸다. 오기가 생겨 절로 악착을 떨게 만드신 거다. 한마디로 굉장히 노련한 조련사다."

"26세의 내가 느낀 인생의 비루함이 제대로 담겼는지 궁금하다"는 그는 "주연배우의 덕목, 스태프와의 유대관계, 배우들끼리의 호흡 등 많은 것을 배웠고 양질의 결과물이 나왔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글=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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