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붐…스트레스 받는 가정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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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되면서 신종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있다. 결혼을 앞둔 자녀들은 신혼여행,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각종 연수여행, 나이든 부모들은 효도관광여행 삼아 한사코 해외로 나가야 「축에 낀다」고 느낀다는 것.
각종 퀴즈나 경연대회의 상품에서 회사원들의 사기 진작 및 노사화합을 다지는 보너스에 이르기까지 해외여행이 널리 이용되고, 사회단체나 문화센터 등이 앞을 다투어 해외여행강좌를 마련하는가하면 신문·잡지·TV·라디오 등도 해외여행안내에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는 등으로 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중산층의 중년층」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게 된 것 같다고 박정혜씨(43. 서울 불광동)는 말한다.
부모 회갑 때 해외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인 양 여겨지는 주변분위기 때문에 박씨는 오는 4월 칠순을 맞는 친정 아버지 생신 때 노부모를 1주일동안 일본에 보내드리기로 했다고. 5남매가 각각 30만∼50만원씩 내서 여행경비를 마련키로 했는데 형제자매가 적은 경우는 그 부담이 더욱 커지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또 고1년 생 딸도 이번 여름방학에는 학생교환프로그램으로 일본에 가겠다고 벼르는데 그 나름의 명분이 뚜렷한 만큼 한사코 말리기도 어려운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털어놓는다.
정길호씨(54·서울수유동)는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겠다는 아들을 말리다 설득에 실패했다고 한숨.
결혼비용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해 부모신세를 져야하는 처지에 해외신혼여행을 한다는 마음가짐부터 잘못됐다며 해외여행은 자신들이 돈 벌어 이 다음에 다녀오라고 간곡히 타일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신혼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제주도에서 며칠 묵는 것보다 별로 더 비싸지도 않고 「한결 그럴듯한 기분」이라 하더라』며 한사코 고집 부린다면서 답답한 표정이다.
사실상 80년대이래 해외여행에 대한 규제가 점점 풀리면서 한국의 해외여행자는 87년에 51만 명, 88년에는 약 72만 명으로 늘었으며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된 올해는 1백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관계당국은 예상한다. 또 올 봄 결혼철을 겨냥하여 9개의 해외신혼여행코스를 개발한 대한여행사의 경우 일본·대만·하와이쪽에 대한 문의와 신청이 활기를 띠고 있는가하면 세방여행사도 오는 4월부터 시작되는 해외신혼여행코스에 대한 문의와 신청이 적지 않다며 해외신혼여행은 이제 새로운 결혼풍속도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리라고 전망.
한편 여행전문가 오성식씨는 『해외여행을 제대로만 한다면 굳이 탓할게 없지만 문제는 누가, 왜, 어떻게 하느냐는 점』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노인들은 무리한 여행일정 때문에 여행을 즐기기는커녕 몹시 힘겨워하면서 자녀들에게 보여줄 「증명사진」과 몇 가지 신기한 이야기 거리, 그리고 선물을 준비하는 3가지 부담에 시달리기 일쑤라는 것. 또 학생과 젊은이들에게는 해외여행을 적극 권장할만하지만 가급적 여행경비를 스스로 마련하고 미리 여행에 관한 자료를 모으면서 구체적인 여행계획을 세우는 등의 철저한 사전준비가 전제돼야한다고 강조한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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