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교수는 제자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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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문방송학과 김경근 교수(50) 의 「비판이론」수업이 진행되기로 되어있는 강의실에는 주인 잃은 교탁과 책·걸상만이 덩그렇게 놓여있어 을씨년스러웠다.
『폐강선언이 감정적이란 비판이 있는 것도 알지만 이 아픔을 재단과 학교, 나를 비롯한 교수와 학생 모두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절대 번복하지는 않겠습니다.』
지난 9일 총장선출 등 학내문제를 이유로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자 자신이 맡고있던 「비판이론」 「세계언론사」 등 두 과목을 스스로 폐강 조치한 김 교수.
『이 강의를 위해 3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해왔습니다. 폐강을 선언했지만 매일 오후7시까지 연구실을 지켜 단 한 사람이라도 찾아오는 학생이 있으면 학점 없는 강의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14일부터 수업거부 여부를 놓고 찬반투표를 벌이겠다는 총 학생회의 결정으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고려대 사태를 지켜보며 토요일 늦게까지 연구실에 남아 있던 김 교수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어떠한 상황, 어떠한 이유로도 대학의 강의가 중단되어서는 안되며 이를 지켜온 것이 80년 고려대의 전통이었습니다.
학생과 교수는 결코 적이 아니며 적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텅 빈 강의실에 주인이 돌아오는 그 날을 기다린다며 김 교수는 말을 마쳤다.
김 교수는 그러나 학생들의 수강 거부가 시한부인 반면 학생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한 자신의 폐강선언은 그렇지 않았다는데 대해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더욱이 교수가 학생을 지도하는 스승의 입장이라면 학생들을 끝까지 강의실에 끌어들이기 위해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여운도 함께 남겼다. <권영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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