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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나가라" 경고 아예 무시…제집처럼 동해 드나드는 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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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진입한 중국 군용기로 주정되는 Y-9JB. 수송기로 제작한 Y-9을 전자전기와 정찰기로 개조한 기종이다. [사진 일본항공자위대]

26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진입한 중국 군용기로 주정되는 Y-9JB. 수송기로 제작한 Y-9을 전자전기와 정찰기로 개조한 기종이다. [사진 일본항공자위대]

“귀측(중국) 군용기가 아측(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사전 통보 없이 무단으로 진입하려고 한다.”
“….”
“목적은 뭔가?”
“….”
“아측 방공식별구역에서 신속히 나가라.”
“….”

지난 26일 중국 공군 소속 전자전ㆍ전자정찰기인 Y-9JB가 KADIZ에 무단진입하는 과정에서 한-중 핫라인을 통해 오간 교신 내용이다. 이 핫라인은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한국 중앙방공통제소(MCRC)와 중국 북부전구 방공센터를 연결한다. 중국의 북부전구는 베이징(北京) 일대부터 동북3성, 산둥(山東) 반도를 포함한 지역을 담당한다. 북부전구의 전력은 유사시 한반도에 투입된다. Y-9JB는 전자ㆍ전파 정보를 수집하면서, 적의 전자 장비를 파괴하는 군용기다.

Y-9JB는 이날 KADIZ와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을 제집처럼 넘나들었다. 한국 공군은 여러 차례 경고한 뒤 퇴거를 요구했지만 중국 공군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중국은 이전엔 KADIZ에 무단진입하면서 “훈련 목적”이라고 응답은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공군의 경고를 ‘씹었다.’ 군 관계자는 “중국이 KADIZ 무단진입과 관련해서 핫라인에서 응답을 안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공군에 따르면 중국의 KADIZ 무단진입은 올해(1~9월) 들어 110여 차례나 된다. 이 정도면 KADIZ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 발표나 다름없다. 26일처럼 오랜 시간 KADIZ를 휘젓고 날아다닌 경우에 잠시 KADIZ을 넘어온 경우를 모두 합해서다. 이는 지난해보다 11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물론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의 항공기가 진입하려면 해당 국가에 미리 알려주는 게 국제 관례다. 중국은 이런 국제 관례를 무시하면서 26일엔 아예 응답을 거부했다.

중국은 그러면서 자신들이 그은 선은 우리에게 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서해를 중국의 전용 안마당으로 간주하면서다. 중국은 2013년 7월 당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들이 그어놓은 서해 작전구역 경계선(동경 124도)을 한국 해군이 넘어오지 말 것을 요구했다. 동경 124도는 백령도 인근이다.

또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미국 해군이 북한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하기 위해 핵 항모인 조지 워싱턴함을 서해로 보내려 하자 중국 해군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앞마당인 황해(서해)로 진입하면 사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중국의 반발에 조지 워싱턴함은 동해로 뱃머리를 돌렸다. 서해는 중국의 영해이며, 서해 상공도 영공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해를 넘어 동해까지 노리는 중국

그런데 올해는 아예 KADIZ를 넘어서 동해로 뚫고 들어오며 중국 영역권을 서해에서 한반도를 지나 동해로 넓히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동해로 들어오는 것은 전술적으론 중국은 한ㆍ미ㆍ일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3국의 대비 태세를 확인하려는 의도이자 전략적으론 서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삼은 데 이어 한반도와 동해까지 안마당 비슷하게 내 세력권으로 인정받겠다는 속내”라고 설명했다.

이달 초 중국 주하이(珠海)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J-20 전투기 2대가 비행하고 있다. 이 전투기는 중국이 자체개발한 스텔스 전투기다. [AP=연합뉴스]

이달 초 중국 주하이(珠海)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J-20 전투기 2대가 비행하고 있다. 이 전투기는 중국이 자체개발한 스텔스 전투기다. [AP=연합뉴스]

중국이 올 초부터 실전배치한 장거리 수송기 Y-20가 주하이 에어쇼에서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장거리 수송기는 유사시 대규모 병력을 먼 거리로 보낼 수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올 초부터 실전배치한 장거리 수송기 Y-20가 주하이 에어쇼에서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장거리 수송기는 유사시 대규모 병력을 먼 거리로 보낼 수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은 동해 해역과 상공까지 자신들의 영향권에 놓기 위해 해군과 공군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위해 해군을 키우고 있지만, 공군에도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며 “전 세계를 놓고 미국 공군과 겨루는 전략공군이 중국 공군의 목표”라고 말했다. 중국 공군은 자체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인 J-20와 장거리 수송기인 Y-20을 올해 초부터 실전배치하고 있다. 또 미 본토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스텔스 전략폭격기인 H-20을 개발하고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몸집이 커지면 큰 옷으로 갈아입듯, 중국 공군이 역량을 키우면서 활동범위도 확대하고 있다”며 “태평양에 진출하는 길목의 한반도와 동해를 세력권에 편입하면서, 동시에 숙적인 일본을 견제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정례적으로 무단진입"

중국 군용기가 이어도~제주도 남쪽~포항 동쪽~울릉도 근처를 왕복하는 코스로 KADIZ를 장시간 무단진입한 것은 26일을 포함해 올해 7번째다. 지난 1ㆍ2ㆍ4ㆍ7ㆍ8ㆍ10월에도 중국 군용기가 거의 비슷한 경로를 따라 날았다. 일곱 차례 모두 하순에 일어났다. 김형철 전 차장은 “중국 공군은 KADIZ 무단진입을 이미 정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정도라면 북부전구가 아닌 그 윗선에서 지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11일 중국 공군의 Su-35 전투기 2대가 H-6K 폭격기를 엄호하고 있다. 이들 군용기는 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바스 해협에서 초계활동을 벌였다. [AP=연합뉴스]

지난 5월 11일 중국 공군의 Su-35 전투기 2대가 H-6K 폭격기를 엄호하고 있다. 이들 군용기는 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바스 해협에서 초계활동을 벌였다. [AP=연합뉴스]

김 전 차장에 따르면 중국의 KADIZ 무단 진입은 냉전 시절의 ‘소련 따라하기’다. 옛 소련은 미국의 동맹국 방공식별구역에 군용기를 보내 정찰 활동을 펴면서 방공식별구역을 무력화하려 했다. 중국이 지금 한반도 인근과 동해 상공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단 중국군용기는 매번 울릉도 근처에서 기수를 돌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이는 그 위로 북상할 경우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정부 소식통이 지적했다. 중국이 치밀하게 계산해서 동해 상공으로 뚫고 나오고 있다는 우려다

한국은 중국의 KADIZ 무단진입에 맞서 경고→전투기 긴급출격→주한 중국 무관 초치 등 조치를 취해 왔다. 하지만 중국의 ‘무시’ 수준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박 위원은 “한국은 KADIZ를 놓고 중국과 지루한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방법이 없다. 당장 효과가 없더라도 전투기를 날려 우리 의사를 매번 강력하게 중국에 전달해야 한다. 절대로 틈을 보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철재ㆍ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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