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앵커, 중국인 사로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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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CCTV의 오후 7시 정규 뉴스 '신원롄보'의 새 앵커로 발탁된 리쯔멍.

이번에 함께 기용된 남자 앵커 캉후이(오른쪽)와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리쯔멍. [CCTV]

중국중앙방송국(中國中央電視臺.CCTV)의 특징은 엄숙과 보수로 요약된다. 뉴스가 특히 그렇다. 때론 선전포고하듯 격렬하고 때론 경전을 읽듯 엄숙하다. CCTV의 특징과 방송형태를 그대로 본받은 것이 북한 중앙방송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기도 하다.

CCTV는 뉴스 앵커를 고르는 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특히 간판 프로인 저녁 7시 뉴스의 앵커는 당 중앙의 비준까지 거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인선과정이 까다롭다. 그래서인지 7시 뉴스 앵커는 사실상 '고정 배역'이다.

가장 최근에 바뀐 것이 1989년 천안문(天安門)사태 직후였다. 당시 앵커가 학생운동에 동조적인 어조로 방송한 것이 문제가 돼 경질됐다.

CCTV는 6일 "7시 뉴스인 신원롄보(新聞聯播)의 앵커에 리쯔멍(李梓萌.29.여)과 캉후이(康輝)를 추가로 기용한다"고 발표했다. 17년 여 만에 7시 뉴스 앵커 진용이 개편된 것이다. 이로써 7시 뉴스의 앵커는 남자 4명, 여자 4명 등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요일별로 뉴스를 진행한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제야 7시 뉴스가 볼 만해졌다" "이제부터 7시 뉴스를 보겠다"는 글들이 인터넷에 속속 올라왔다. 이유는 바로 리쯔멍 때문이었다.

그는 이 방송국의 기존 앵커들과는 달리 서구풍의 미녀다. 딱딱한 표정따윈 찾아볼 수 없다. 늘 웃는 얼굴이다. 몸을 약간 앞으로 내민 듯한 자세로 마치 대화하듯 편안하게 말한다.

그는 출발부터 스타였다. 99년 중국언론대학(中國傳媒大學)을 졸업하고 CCTV에 입사하자마자 신설 뉴스프로그램을 맡았다. 그것도 생방송이었다.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그는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나 만의 스타일로 뉴스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결코 전음통(傳音筒.소리를 전달하는 통)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반드시 뉴스를 소화한 뒤 내 방식으로 가공해 '나의 뉴스'를 전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최근 중국기자협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첫 방송이 나간 뒤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상큼하고 편안하다'는 평가와 '지나치게 과장되고 불안하다'는 평가가 반반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그에게 빠져들었다. 시청률이 수직 상승했다. 그는 국제속보(國際時迅), 저녁 5시 뉴스 등에 잇달아 진출했다. 눈부신 약진이다. 그리고 입사 7년 만에 7시 뉴스의 앵커로 우뚝 서는 데 성공했다.

'숙능생교(熟能生巧.숙련된 뒤 기교가 나온다)'는 중국의 직장 상사들이 입사 초년병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말이다. 입사 7년 차인 리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시간이 지날 수록 앵커 일이 어렵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기교'의 수준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며 겸손해했다.

아르마니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녀는 산둥성(山東省) 출신으로 1m74㎝의 장신이다. 운동과 영화 감상, 그리고 인터넷 서핑을 즐긴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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