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4년 만에 내전 … 동티모르 구스마오 대통령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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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겪고 있는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가운데)이 1일 수도인 딜리의 임시 피난소를 방문해 국민을 위로하고 있다. [딜리 AP=연합뉴스]

신생국가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60) 대통령이 3일 눈물을 흘렸다. 수도 딜리의 대통령궁에서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과 국내 유혈분쟁 종식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천신만고 끝에 독립을 쟁취한 지 4년도 안 돼 자국 병력 간 충돌로 두 달 넘게 혼란이 이어지는 현실이 한없이 부끄러워 흘린 눈물이었다는 게 호주 언론과 AP 등 외신 보도다.

그는 이날 다우너 장관에게 자국 치안 유지를 위해 병력을 파견한 호주 정부에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깜짝 놀란 다우너 장관은 그의 등을 감싸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다우너 장관은 이내 구스마오 대통령에게 하루빨리 유혈충돌을 야기한 강제퇴역 군인들과 협상해 내전을 종식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동티모르 치안을 위해 호주 군인을 장기간 체류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동석한 동티모르 주재 호주군 사령관 믹 슬레이터 준장과 해군 사령관 러스 숄더스 중장도 유엔이 나서 동티모르를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호주 정부의 입장을 전했다.

사실상 유엔에 신탁통치를 하라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다우너 장관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한 구스마오 대통령과 알카티리 총리 간 권력투쟁에서 호주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을 것이라는 통보도 했다. 어느 것 하나 구스마오 대통령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그의 인생역정은 동티모르 독립투쟁 그 자체다. 1975년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를 강제 점령하자 바로 독립혁명전선을 조직해 무장투쟁에 나섰다. 81년 민족해방군 총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독립할 때까지 20여 년간 그는 손에서 총을 놓지 않았다.

92년에는 인도네시아 군 당국에 체포돼 연금생활을 했으며 곧 풀려난 뒤 호주로 건너가 7년 동안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99년 8월 유엔 감시 아래 치러진 동티모르의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결정되자 그는 7년 만에 귀환해 독립을 준비했다. 그의 독립과 민주를 위한 투쟁에 국제사회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99년에는 국제인권상인 사하로프상을 받았고 이듬해엔 제1회 광주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02년 4월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의 취임 일성은 자유와 민주, 그리고 잘사는 나라 건설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알카티리 총리와 권력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400여 명에 불과한 군부가 지역 차별 문제로 양분됐다.

결국 올 3월 차별에 항의하던 600여 명이 강제퇴역 조치를 당하면서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다. 양측 간 교전으로 지금까지 20여 명이 숨졌다. 이후 동티모르 정부는 지난달 말 호주와 뉴질랜드 등 4개국에 병력 파견을 요청해 현재 외국군에 의존해 간신히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

내전을 피해 외국으로 떠났거나 유엔이 제공한 비상 캠프로 이주한 주민만 10여 만 명에 달한다. 그래서 구스마오의 눈물은 국가 통합을 이뤄내지 못한 위정자의 때늦은 후회로 보인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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