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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재명·김영록 지사 참 기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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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참 기발하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영록 전남지사의 ‘청년 국민연금’을 보고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 국민연금 제도가 난수표처럼 어려운데 어떻게 이런 허점을 찾아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두 지사의 컨셉이 비슷하다. 만 18세에 국민연금 보험료 9만원을 한 번만 대신 내주는 거다. 둘 다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내년 예산을 편성해 실행 절차에 돌입했다. 이 지사는 모든 18세 청년(16만명)이, 김 지사는 취업을 준비 중이면서 연금 가입을 희망하는 4500명이 대상이다.

보험료를 한 번 내준다고 벌이가 없는 청년이 계속 낼 리가 없다. 그 나이에 47년 후(만 65세)의 노후 걱정을 할 리도 만무하다. 한 번 내고 나면 보험료를 안 내도 되는 납부예외자가 될 것이다. ‘18세 첫 납부’는 매우 중요하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하거나 사정이 나아지면 납부예외 기간의 미납 보험료를 한꺼번에 추후 납부(추납제도)할 수 있다. ‘첫 납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추납은 원래 이런 데 쓰려고 만든 게 아니다. 실직·폐업 등에 직면하면 보험료를 내기 힘들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다. 일용 근로자로 힘들게 젊은 시절을 보내면 보험료 같은 데로 눈 돌릴 겨를이 없다. 이들을 위한 제도가 추납이다. 연금수령의 최소 조건(10년 가입)을 못 채웠거나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에게 ‘보험료 공백 기간’을 나중에라도 채우게 허용한, 일종의 특례이다. 청년연금은 추납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기형적 연금’을 운영하는 나라나 지방자치단체가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

추납을 허용하면 연금 재정에는 마이너스다. 성실하게 매달 보험료를 내는 사람과 형평성이 안 맞다. 그런데도 추납이 있는 이유는 국민연금을 도입한 지 30년밖에 안 됐고 보험료를 못 낸 사각지대가 워낙 많아서다. 다소 무리해서라도 이들을 끌어안고 가는 게 정의에 맞다는 합의를 이뤘다.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청년배당·무상교복·무상산후조리원 등을 쏟아냈다. 보건복지부와 끊임없이 갈등하면서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했다고 자평할지 모르지만 정교하지 못한 설계 탓에 ‘묻지마 복지’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선진국 복지는 국민연금이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정부가 정교하게 추진해도 버겁다. 이걸 지방정부가 둑에 구멍을 내려 한다. 전남은 청년 유출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왜 하필 국민연금이 그 수단일까.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