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관가, 당과 청 사이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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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2일 지방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현재 부동산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 부동산 정책을 바꾸면 무슨 대안이 있겠나"라며 "수십 년 동안 있었던 정책을 들여다 보고 연구해 가장 핵심적인 정책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안 없이 무조건 흔들어 (현재 부동산 정책을) 깨뜨리면 결국 부동산 투기업자들의 승리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여당 내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같은 날 열린우리당은 원내대표단 회의를 열고 "선거 결과를 겸허히 새겨 부동산.세금 정책에 민의를 과감히 반영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정덕구 의원은 4일 "중장기 보유 1세대 1주택을 중심으로 1~2년간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비과세하고 과세표준이 올라간 만큼 거래세를 낮추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정부.여당이 시장에 오만한 자세를 보이며 시장의 힘을 무시하지 않았나 반성한다"며 "정부.여당 내에서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를 성역시해 시장과 화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이미 시장에서 (정책이) 실패하고 있는데도 수구세력의 반발로 인식해 경직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 경제부처, 골격은 손 못 대=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 등 경제부처 관계자들은 일단 청와대 측과 같은 주장을 편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1일 "부동산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고, 권도엽 건교부 정책홍보관리실장도 4일 "기존 정책의 틀에 변화는 없다"고 강조했다. 현 부동산정책의 골격과 내용에 문제가 없는 데다, 부동산 시장이 곧 안정세를 찾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책을 변경할 때가 아니라는 게 공식적인 반응이다. 특히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부동산정책을 바꾸다 보면 정부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져 시장이 더 불안해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부동산정책의 일부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민이 원한다면 종합부동산세 부과 등 보유세 현실화에 맞춰 부동산 거래세(취득.등록세)를 더 낮추고 1가구 1주택자나 고령자의 보유세 부담을 낮추는 방안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동산정책의 근간은 유지하면서 거래가 위축된 시장의 숨통을 터주는 미세조정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자본이득 환수를 위한 양도소득세는 8.31대책의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론하는 양도세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매물 나오게 해야 시장 안정"=업계에서는 ▶양도소득세율 인하▶재건축 규제의 일부 완화 등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유세 강화와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라는 부동산정책의 골격을 흔들지 않으면서 시장 수급을 다소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방안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강남권 등 집값 급등 지역의 보유세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양도세 때문에 매물이 나오지 않거나 양도세 부담이 고스란히 가격에 반영돼 집값이 더 오르는 등 부작용이 심하다"고 말했다. 또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개발이익 환수를 위한 장치가 마련된 만큼 재건축을 통한 공급이 이뤄지게끔 층수.용적률 제한, 소형 의무건설 비율 등의 규제는 완화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청의 갈등이 이런 대안의 검토조차 힘든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당의 갈등이 심해지면 당.정 간 조율이 어려워져 대안 검토를 할 수 없게 되는 등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종윤.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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