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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부부싸움 중 뛰어내려 숨진 남편…두고 간 아내 실형

중앙일보

입력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지난해 7월 23일 새벽 0시 30분쯤, 김포시의 편도 2차선 도로 한복판에 한 남성이 누워있었다. 남성에게선 술 냄새가 났고, 입에서 피가 났다. 무릎도 살같이 까져 있었다.

法 "보호 의무 있는 부부사이…유기 인정"

이 남성은 인천에 살고 있던 B씨(당시 54세)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B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3시간 전쯤, B씨는 아내 A씨(52)와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다툼이 잦아진 부부는 그날도 말다툼을 했다. 주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다퉜다. 아내 A씨는 혈중알콜농도 0.15%상태로 운전대를 잡았고, 평소 주량을 훌쩍 넘는 소주 4병을 마신 B씨는 조수석에 탔다.

B씨는 "집에 안 가겠다" "내리겠다"면서 자꾸 차 문을 열었다. A씨는 억지로 내려버린 남편을 차를 돌려 다시 데려가기를 두 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세 번째엔 그러지 않았다.

결국 차에서 내린 B씨는 크게 다친 채 길에서 발견됐다. 병원에선 두개골이 깨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일 오후 수술이 이뤄졌지만 B씨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경기도의 한 편도 2차로 도로. 사진은 경찰서에서 야간 음주운전 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일산서부경찰서]

경기도의 한 편도 2차로 도로. 사진은 경찰서에서 야간 음주운전 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일산서부경찰서]

검찰은 아내 A씨를 기소했다. 음주운전 혐의와 함께 유기치사죄를 적용했다. "술마신 남편이 주행중 차에서 뛰어내렸으면 경찰에 연락하거나 병원으로 데려갔어야 하는데 아무 조치 않고 버려두고 갔다"는 이유에서다.

유기죄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호할 의무 있는 자'가 그 일을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죄(형법 271조)다. 부부도 서로를 '보호할 의무 있는 자'에 해당된다. 민법상 '부부간의 의무'란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돼 있다(826조). 대법원(2018년 5월)은 "유기죄에서 말하는 보호의무에는 부부간의 부양의무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부장 정철민)는 "A씨는 운전자이자 아내로서 남편을 구호할 의무가 있는데도, 주행중인 승용차 문을 열고 차도로 뛰어내리는 B씨를 방치해 유기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지난 9일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 이미지 [연합뉴스]

법원 이미지 [연합뉴스]

A씨는 재판과정에서 B씨가 달리는 차에서 내린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차에는 자동잠금기능이 있어서 주행 중에는 문에 열리지 않는다. 당시 한 공원 주차장 입구에서 차를 세워 내려주었고, B씨가 걸어서 차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B씨가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리는 장면은 A씨의 차 블랙박스나 도로 CCTV에 찍히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전후 CCTV와 신고자 박씨의 진술을 종합해 "만취상태인 B씨가 야간에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서 2분만에 200m를 이동했을 리 없다"고 봤다. 또 자동잠금기능이라는 것도 "시속 약 15km이상으로 달리는 경우에만 자동으로 잠긴다"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B씨는 완전히 정차하지 않은 차에서 내렸고, 이를 보고 놀란 A씨는 속도를 늦췄을 뿐"이라는 것이 재판부가 보는 진실이다. 재판부는 "B씨의 찰과상 등 상처, 앞니, 발에서 벗겨져 서로 다른 장소에 떨어져 있던 양쪽 신발 등을 보면, B씨는 이동중인 차에서 내리다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것"이라 판단했다. 부검 결과 두개골과 눈 위쪽 뼈 골절이 발견됐는데 이는 뒤로 넘어질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현상이란 점도 고려됐다.

검찰은 A씨가 "남편을 서울의 큰 병원으로 데려가겠다"고 해 수술이 늦어진 점도 문제삼았지만, 재판부는 이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보호자가 더 큰 규모의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옮겨달라고 하는 일은 흔하고, A씨가 시누이로부터 "서울아산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아산병원으로 옮겨달라"고 한 사정을 고려하면 일부러 남편에게 나쁜 영향을 주려 한 거라 볼 순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수술 지연이 B씨의 사망을 야기한 또 다른 원인이 됐다고 하더라도, 이미 유기행위가 피해자 사망의 유력한 원인이 되는 이상 유기치사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이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다. A씨는 항소했고 2심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루어진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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