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30억 탕진한 임대 관리인, 前휘문 이사장 "잘 아는 사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W타워의 세입자들이 16일 오전 건물을 찾은 휘문재단 관계자에게 '휘문재단이 건물임대 제반 하자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담긴 사용인감계를 보여주며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박태인 기자]

W타워의 세입자들이 16일 오전 건물을 찾은 휘문재단 관계자에게 '휘문재단이 건물임대 제반 하자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담긴 사용인감계를 보여주며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박태인 기자]

휘문 중·고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휘문의숙이 소유한 대치동 더블유(W) 타워의 임대 관리를 담당하다 세입자 100여명의 보증금 130억원을 탕진한 신모씨가 주택임대관리업 등록도 하지 않은 중소 부동산 회사의 전직 직원이었던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휘문재단, 자본금 1000만원 회사와 수의계약 #이사장 "나랑 잘 아는 사람", 알고보니 부동산 직원 #교육청 지난 3월 "보증금 위험하다" 경고

지난 3월 휘문의숙 비리 감사를 진행했던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신씨가 W타워 관리를 맡기 전 서울 D부동산 회사의 직원이었다는 진술을 휘문의숙의 민 전 이사장과 신씨 모두에게 받았다"고 했다. 또한 "지난 3월 이런 보증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학교 측에 경고를 했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 15일 W타워 엘레베이터에 "다른 사업을 하다 보증금을 모두 탕진했고 벌을 달게 받겠다"는 공고문을 붙인 뒤 잠적했다. 이후 100여명의 세입자들은 건물의 소유주인 휘문의숙에게 보증금 반환 요구를 하고 있다. 휘문의숙 법인 사무국장은 이날 세입자들을 만나 "우리도 횡령 사실을 파악한 피해자"라며 "신씨와의 법적 절차 등을 거치고 최종 판결이 나오면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최종 판결까지 몇년을 기다리라는 말이냐"며 반발했다.

신씨는 W타워 착공이 시작되던 2011년 12월 회사를 그만둔 뒤 자본금 1000만원짜리 회사 (주)휘문아파트관리를 설립하고 휘문의숙 전 이사장 민모씨와 포괄적 임대운영에 대한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당씨 신씨의 회사 주소는 휘문고등학교의 주소와 똑같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952-1번지로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는 '페이퍼 컴퍼니'에 가까웠다. 정식 자격도, 자본금도 없는 개인 사업자에게 휘문의숙이 세입자 보증금 130억원이 걸린 학교 재산 관리를 전적으로 일임한 것이다.

W타워의 관리를 맡았던 신모씨의 (주) 휘문아파트관리 등기사항전부증명서. 2018년 4월 이전까지 자본금이 1000만원이었고 회사의 첫번째 주소가 휘문고등학교로 되어있다. [박태인 기자]

W타워의 관리를 맡았던 신모씨의 (주) 휘문아파트관리 등기사항전부증명서. 2018년 4월 이전까지 자본금이 1000만원이었고 회사의 첫번째 주소가 휘문고등학교로 되어있다. [박태인 기자]

민 전 이사장은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관련 사실을 지적받자 "신씨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였고 완공 후에는 신씨가 근무했던 회사의 자회사가 건물을 관리할 것으로 알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전 이사장은 신씨가 근무하던 D부동산 회사가 그의 친인척이 운영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2011년 9월 열린 휘문의숙 이사회에서도 민 전 이사장은 "계약은 신씨와 체결하지만 건물 관리는 D회사가 자회사를 차려 운영할 것"이라 말해 이사들의 계약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휘문의숙은 실제 계약을 신씨의 1인 회사라 볼 수 있는 (주)휘문아파트관리와 체결했다. 신씨는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이런 민 전 이사장의 답변에 "나는 D회사의 일개 직원이었을 뿐"이라 반박했다고 한다. D회사 관계자는 "W타워에 대한 관리를 맡은 적도 없고 맡을 계획도 없었다"고 했다. 신씨가 과거 회사에 근무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선 답을 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백억짜리 학교 재산을 자격도 없는 이사장 지인에게 맡긴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당시 이사장에게 세입자 보증금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이사장은 '신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16일 오전 W타워를 방문한 휘문재단 관계자에게 세입자들이 '보증금 반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아직 사안이 전체적으로 파악이 안된 상태라 정리가 되는대로 입장을 밝힐 것"이라 답했다. [박태인 기자]

16일 오전 W타워를 방문한 휘문재단 관계자에게 세입자들이 '보증금 반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아직 사안이 전체적으로 파악이 안된 상태라 정리가 되는대로 입장을 밝힐 것"이라 답했다. [박태인 기자]

대출을 얻어 W타워에 2억여원의 전세 계약을 했다는 세입자 윤모(56)씨는 "아파트 계약을 할 때 관리사무소에서 휘문의숙이 보증을 서는 것이라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휘문만 믿고 계약을 했는데 정말 답답한 상황"이라고 울먹였다. 휘문의숙은 W타워 세입자들에게 '사용인감계'를 제공했는데 해당 서류에는 "임대대행 및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하자는 학교법인 휘문의숙이 책임질 것을 확약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에 대해 휘문의숙 측 관계자는 "여기서 제반 하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법적으로 임차인(신씨)와의 업무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것이지 전차인(세입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민 전 이사장과 신씨를 '공동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방모(35)씨는 "재단의 입장이 변화했다고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두 사람 간의 이뤄진 특혜 의혹에 대한 면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 동작경찰서는 민 전 이사장과 신씨에 대해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사건을 수사 중이다.

휘문재단 관계자는 "지난 3월 교육청 감사 이후 전 이사장도 해임됐고 전 사무국장 등 관련자들도 파면됐다"며 "내부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TF팀을 꾸려 법률 검토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했다. 관계자는 "여러 사안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는 대로 세입자들에게 설명을 드릴 예정이다. 우리도 직접 이 건물을 관리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