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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 푼도 안 깎은 청와대 특활비 용처 투명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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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의원님,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삭감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읍소해 회의장이 웃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야당 시절 박근혜 청와대의 특활비 오·남용을 맹공하면서 특활비 폐지론까지 들고나왔던 사람들이 집권 1년여 만에 태도를 싹 바꿨으니 실소가 터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보름 만에 “청와대 특활비·특정업무경비를 53억원 줄인다”고 선언했고 올해 특활비도 지난해 대비 50억여원을 삭감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청와대 특활비는 181억여원으로 올해 대비 한 푼도 줄지 않았다. 국회는 여론의 뭇매를 받은 끝에 특활비를 기존 63억원에서 내년 10억원으로 84% 쳐냈다. 정부 부처들도 내년도 특활비를 9.2% 줄였고 대법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5개 기관은 아예 폐지했다. 특활비를 꼭 써야 하는 검찰·경찰조차 15~20% 삭감했다. 청와대만 거꾸로 갔다. 딱 한 번 50억원 줄인 것으로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민심을 거슬러도 한참 거스른 인식이다.

기획재정부가 고시한 특활비의 정의는 ‘정보수집과 사건수사 및 이에 준하는 국정 활동’에만 쓰이는 비용이다. 따라서 국가정보원과 검경 이외의 정부기관은 특활비를 쓸 이유가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8월 22일 국회에서 “기밀 유지 등 최소한의 경우 외엔 특활비를 대폭 삭감하고 (운영을)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오로지 청와대만 특활비 삭감을 거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정말 그렇게 필요한 돈이라면 공식 예산항목으로 전환해 영수증 처리를 하되 결산은 비공개로 하면 된다. 또 통치행위상 특활비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면 사후에라도 감사원 감사와 국회 비공개 보고를 의무화해 오·남용을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