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개발 중단 땐 경수로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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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국 외무장관은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담을 열어 이 같은 협상안을 마련했다. 마거릿 베킷 영국 외무장관은 회의 뒤 "이란에 두 가지 길이 있다"며 "이란이 바람직한 길(positive path)을 선택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제안은 이란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란이 대결보다 협력을 택하는 게 좋다는 걸 전달하기 위한 합의"라고 보도했다. 공은 이제 이란 쪽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1일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 6개국 외무장관들이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안에 합의한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에서 셋째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연단에 서 있는 사람이 마거릿 베킷 영국 외무장관이다. [빈 AFP=연합뉴스]

◆ 이란 유인에 초점=6개국은 향후 이란의 반응을 지켜봐야 한다는 이유로 합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브리핑을 한 자리에선 "이란에 보상을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만 강조했다. 반면 제재(sanction)란 단어는 아예 쓰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관리들조차 제재 대신 '조치(measures)' '행동(actions)' 등의 표현을 썼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인센티브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이란을 일단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당근은 무엇=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중대한 외교적 정책 전환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란은 원자력발전소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게 그간 미국의 입장이었으나 이젠 달라졌다는 것이다. 신문은 "5~6쪽에 달하는 합의문엔 (이란의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을 전제로) 이란의 원자력산업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이란에 경수로를 건설해 주고, 핵연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걸 보장한다는 등의 제안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이란에 투자를 늘리고 교역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전했다.

◆ 채찍은 다양하나 뭘 쓸지는 몰라=베킷 장관은 "이란이 협상을 거부할 경우 안보리의 (제재)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이에 동의했다고 한다.

회담에 참여한 외교관들은 "크고 작은 제재 방안이 논의됐다"면서도 "그러나 이란을 제재할 경우 어떤 카드를 꺼낼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는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대(對)이란 핵 관련 부품 및 기술 수출 금지 ▶이란의 핵 관련 기구에 대한 자산 동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협력 중단 ▶이란에 대한 무기 또는 특정 상품 수출 금지 ▶이란 고위 관리들에 대한 비자 발급 중지 ▶이란의 국제무역기구(WTO) 가입 거부 등의 방안이 논의됐다.

◆ 이란의 선택은=이란원자력기구의 고위 관리는 2일 협상안과 국제 사회의 점증하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 농축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모하마드 사이디 이란원자력기구 부의장은 이날 이란 ISNA 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란이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핵 농축 활동을 계속한다는 방침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사이디는 또 "이란의 핵 농축 활동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미국과 대화에는 응하겠지만 핵 활동 동결을 전제로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기존의 공식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란은 당분간 신중한 태도를 취하며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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