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어떤 형태든 북.미 간 대화 바람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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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의 위폐 제조와 유통 등 불법 거래 의혹을 둘러싼 북.미 간 갈등으로 6자회담이 급속히 동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힐 차관보를 전격 초청한 의도에 대해서는 추측이 엇갈리고 있다. 6자회담 복귀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6자회담 실패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기 위한 구실 확보용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 의도와 관계없이 미국은 북한의 제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6자회담의 표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떤 형태로든 북.미 간에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대화 없이 돌파구는 열릴 수 없다. 그 대화가 6자회담의 울타리 안에서 이뤄지든, 밖에서 이뤄지든 형식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힐 차관보가 평양에 가서 미국의 입장을 설명해 주고, 또 북한 측 얘기를 들어 보는 게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다.

특히 우리는 미국의 직접대화 방침 선회로 이란 핵 문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이 힐 차관보와의 직접대화를 제의한 점에 주목한다. 신보수주의 세력의 제동 때문에 이란과의 직접대화를 거부해 온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현실주의 외교를 내세운 협상파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시차를 두고 동일한 궤적을 밟고 있는 북한과 이란 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미국은 모처럼 조성된 모멘텀을 제대로 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