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못 믿어, 차라리 수능 2번"…후폭풍 이는 숙명여고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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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수사결과가 발표된 12일 숙명여고 앞에서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학부모단체 대표 등이 숙명여교 교장과 교사의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수사결과가 발표된 12일 숙명여고 앞에서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학부모단체 대표 등이 숙명여교 교장과 교사의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50대 김모씨는 숙명여고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첫째 아이가 곧 수능을 치르고 둘째도 고등학생인 김씨는 "자녀들이 숙명여고에 다니진 않지만 최근 사건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며 "내신 중심의 수시 제도 공정성을 더욱 불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쌍둥이뿐 아니라 숙명여고에 전·현직 교직원을 부모로 둔 졸업생에 대한 전수조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종 폐지" vs "썩은 부분만 도려내야" #조희연 "신속 파면 및 퇴학 권고" #정시 확대 요구에 힘쏠릴 듯 #

전 교무부장 A씨와 쌍둥이 자매가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고 같은 날 학교도 이들에 대한 파면과 퇴학 절차를 밟으며 숙명여고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13일 입장문을 내고 A씨에 대한 신속한 파면과 쌍둥이 자매의 퇴학 조치를 재차 권고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촉발한 강남 엄마들이 모인 입시 전문 사이트 등에선 사건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점차 커지고 있다.

강남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더이상 내신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일부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정시 확대' 운동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단 한번의 수능으로 결정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수능을 2번 보는 방향으로 기회를 다시 주면 되지 않느냐"며 "학교 내신은 이제 믿을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숙명여고 학부모들의 모임인 '숙명여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여전히 숙명여고 정문 앞에서 촛불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비대위 소속 한 학부모는 "지난 10년간 숙명여고의 내신 비리 가능성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를 초래한 학종 등 수시 전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학년도 대입 수시 비율은 76.2%다. 현재 고교 2학년생이 치를 2020학년 대입의 수시 비중은 역대 최고인 77.3%다. 수능위주 전형(19.9%)은 처음으로 20%대 밑으로 하락했다. 이에 일부 학부모 단체들은 "학교 내신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시 비중이 너무 높다"고 강조했다. A씨가 과도하게 욕심을 내다 운이 나쁘게 걸렸을 뿐 은밀하게 이뤄지는 입시 비리는 더욱 많다는 주장이다. 실제 수서경찰서도 숙명여고 사건을 수사하며 지난해 시험 유출 증거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12일 수서경찰서가 공개한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의 증거. 쌍둥이 자매 중 한 학생이 시험지 한편에 작게 시험 정답을 나열해 적어놓았다. [사진 수서경찰서]

12일 수서경찰서가 공개한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의 증거. 쌍둥이 자매 중 한 학생이 시험지 한편에 작게 시험 정답을 나열해 적어놓았다. [사진 수서경찰서]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는 분들은 수능 확대를 요구하지만 이를 통해선 학업성취도의 일부분밖에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강 교수는 "비리나 부정이 생기면 이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해야지 제도 자체를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정제영 교수도 "학교마다 또 학교 내 과별로 원하는 학생들의 특성과 능력이 다르다"며 "대학에 학생 선발권의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학생부 종합전형이 공교육 정상화에도 이바지한 측면도 있다"며 "다만 학부모들의 불신을 해소할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내신 비중을 현재보다 낮출 필요는 있다"고 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숙명여고 사태로 내신을 불신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질 것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입시 제도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수시 폐지 움직임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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