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닉슨」을 미국 대통령 자리에서 밀어낸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진작 그 사건을 놓고 국민들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했으면 대통령 자리까지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닉슨」은 끝끝내 버티다가 나중에 백악관 녹음 테이프가 발견되었다. 그것을 숨기려다 그만 꼬리를 밟혔다. 부정직이 「닉슨」의 유죄였다.
「카터」가 유능한 대통령이 되리라는 것은 사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미국의 매스컴들은 「카터」를 「플레인스의 플레인」이라 불렀다. 플레인스는 그가 태어난 고장의 이름이고, 플레인은 별 볼일 없는 수수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그의 정직성, 그것 하나를 보고 한 일이었다. 「닉슨」의 비굴한 거짓말에 하도 데어 이제는 미국의 대통령쯤 되면 정직해야 한다는 교훈을 찾으려한 것이다. 「레이건」대통령은 이른바 이란·콘트라 스캔들 때문에 하마터면 대통령 자리를 내놓을지도 모를 위기를 겪었다. 「레이건」은 때를 놓치지 않고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잘못했다(어팔러자이즈)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부하들은 의회 청문회에 나가 정정당당히 그것은 자신의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고 증언했다. 웃사람이 정직하면 아랫 사람도 마음 속에서 의리가 솟구치게 마련이다. 바로 「노스」중령은 그래서 일약 미국사회의 영웅이 되었다.
공자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은 원래 정직한 법인데, 정직하지 않고도 살아남은 이는 요행히 형벌을 면한 것 뿐이다』
지금 이런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만일 전두환씨 부부가 지난번 국민에게 사과 성명과 함께 「전재산」을 내놓을 때 정말 모든 재산을 숨김없이 공개했더라면 십중팔구 국민들은 측은한 생각도 했을 것이다. 아마 한족에선 재산의 일부는 돌려주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도 나왔음직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 속으로 『설마 저것 뿐일라고…』 하는 생각들을 감추지 못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양 어디에 있다는 8천평의 땅문서가 발견되었다. 당사자의 변호사는 그게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사람들의 심증이 어느 쪽일까는 더 물을 필요도 없다. 슬프고 딱한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