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축구의 추억 … 굿바이 라일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닉 라일리(57) GM대우 사장은 3월 인천국제마라톤에서 인천 부평공장 직원 750여 명과 함께 5㎞ 단축 코스를 완주했다. 이 행사 한 달 전 직원들과 축구를 하다 발을 접질려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격려사만 읽으라고 했지만 그는 시종 쩔뚝거리면서도 환한 표정으로 전 코스를 달렸다.

GM대우 닉 라일리 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지난달 열린 사내 체육대회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30일 승진과 더불어 조만간 한국을 떠나는 라일리 사장의'스킨십 경영'이 화제다.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라는 점 때문에 자칫 서먹서먹할 수 있는 노사관계를 스포츠나 회식 자리를 통해 풀어 가족 같은 기업문화를 일궜다. 이는 회사를 3년 만에 흑자로 되돌리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을 듣는다. 올해 GM대우의 국내외 판매목표는 160만대. 고전하는 미국 GM의 전세계 생산기지 가운데 40%라는 최고의 판매신장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 럭비와 스킨십 경영=그가 스킨십을 강조한 데는 사연이 있다. 과거 영국 복스홀사 사장을 할 때 겪은 노사갈등 기억이 뇌리에 단단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영국 웨일즈 출신인 그는 GM의 영국 현지 브랜드인 복스홀 사장을 하면서 사용자에 대한 직원들의 불신이 깊으면 불량률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는 대학 시절까지 아마추어 럭비 선수를 했다. 몸을 맞대고 뒹구는 럭비에서 동료애가 샘솟는다는 걸 느꼈다. 스킨십 경영에는 럭비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한국에서 럭비 대신 택한 건 축구였다. 2002년 1월 부임 후 매년 인천 부평, 전북 군산, 경남 창원 등 전 사업장이 참가하는 '사장배 축구대회'를 열었다. 그러면서 직원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뒹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붉은악마 T셔츠를 입고 서울 광화문에서 직원들과 함께'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서툴긴 해도 간단한 축사를 한국말로 할 수 있게 됐다.

◆ 노사화합은 경영자 책임=라일리 사장은 지난해와 올해 1월 1일 각각 인천 강화도 봉천산과 월미도 앞바다에서 이성재 노조위원장과 함께 '노사합동 신년 해맞이'를 했다. 돼지머리를 올려놓는 한국 전래의 고사를 지냈다. 그는 "노사화합에는 스킨십 못지 않게 투명 경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기마다 사업장을 돌면서'경영현황 설명회'를 했다. 경영 수치를 낱낱이 보여주며 회사의 경영환경과 어려움.비전 등을 공유했다. "직원들이 회사 소식을 언론이나 외부에서 먼저 듣게 되면 노사간 신뢰가 쌓일 수 없다" "노사 관계가 나쁘면 그 70%는 경영진 책임" 등이 그의 지론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된 대우차 근로자 전원(1300여 명)을 3월 중순 복직시킨 것도 용단이었다. 이성재 노조위원장은 그때 "라일리 사장의 투명경영 의지와 스킨십 자세가 회사 경영정상화와 해고자 복직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했다. 라일리 시장은 GM대우를 회생시킨 공로로 GM의 아.태본부 사장으로 승진해 6월 중순 중국 상하이로 부임한다.

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