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엔 요원" … 국정원 교육 현장 언론 첫 공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가정보대학원에서 특강을 마친 국정원 신입 요원들이 '정보는 국력이다'는 원훈(院訓)이 걸린 복도 계단을 오르고 있다. 신입 요원들은 매일 짧게는 2∼3㎞, 길게는 10㎞를 달리며 체력과 인내력을 다진다. 김태성 기자

국가정보원 내곡동 청사 안에는 이름도 사진도 없는 46개의 위패를 모신 보국탑이 있다. 순직한 46명 중 이름과 얼굴을 남긴 사람은 1996년 귀가 중 괴한에게 저격당해 숨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주재 최덕근 영사뿐이다. 국정원은 언론의 교육시설 취재에 처음으로 응했지만 직원들의 얼굴과 실명 공개는 허용하지 않았다. 나침반 모양의 국정원 마크를 가슴에 단 신입요원들이 태권도 수업을 받고 있다. 왼쪽 상단의 국정원 엠블럼은 국정원의 영어명칭(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의 첫 글자를 형상화한 것으로 마크와 함께 사용된다.

24일 경기도 판교 인근의 국가정보대학원 정문 앞. 여느 대학원과 달리 베레모를 쓰고 검은 선글라스로 시선을 감춘 경비원이 무장 경계를 서고 있다. 이곳은 국가정보원 신입요원을 비롯해 국정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각종 직무교육을 하는 국가 보안 시설이다. 청와대 경호실.외교부 등 일부 부처 직원들의 보안 교육도 이곳에서 진행된다. 중앙일보는 국정원의 협조를 받아 국정원 새내기들이 민간인 티를 벗고 정보요원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국정원 교육 시설과 신입요원의 교육 과정이 언론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 2시 대학원 체육관의 무도장. 국정원 신입요원들의 태권도 수업이 시작됐다. 남녀 구분 없이 주먹을 쥔 채 엎드려 팔굽혀 펴기로 몸을 풀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겨루기'에 들어갔다. 태권도에 비해 옆차기와 주먹을 자주 사용하는 게 눈에 띄었다. 태권도 7단의 김모 사범은 "실전에 도움이 되는 동작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연습시킨다"고 했다. 보통 득점 위주의 태권도 경기에서는 발등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앞돌려차기가 자주 등장한다. 타격할 때 소리가 커 득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 사범은 "발차기에서는 옆차기와 뒤후리기를 중시하며, 근접해서 싸울 때 도움이 되는 주먹 타격도 강조한다"고 했다. 신입요원들은 교육을 받는 동안 모두 유단자가 돼야 한다.

같은 시간 다른 강의실에서는 또 다른 그룹의 신입요원들에게 '기억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국정원 측은 정보 활동을 하면서 꼭 필요한 사항을 기억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법'을 좀 알려 달라는 기자에게 교육 담당자는 인간의 다섯 감각기관을 최대한 활용해 마치 '영화를 보듯이' '사진 찍듯이' 혹은 '녹음하듯이' 기억하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다. 교육 과정엔 기억술 외에 '독심술(讀心術)' 등도 있었다.

이에 앞서 오전 11시 대학원 대형 강당에 '게릴라'가 나타났다. 문화게릴라로 불리는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두 시간 동안 '연극 감상법' 특강을 했다. 이씨는 오이디푸스와 햄릿 등 꼭 알아둬야 할 연극을 거론한 뒤 "나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지만 여러분도 경계인"이라며 "경계인은 당파성이 없어야 하며,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국정원은 연극 이외에도 뮤지컬.오페라 등 다양한 분야의 외부 특강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켰다. 교육 담당자는 "세상만사를 두루 알고 있어야 업무를 하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 간에 말이 통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입요원에게 골프를 가르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강의를 받는 신입요원들은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서류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일률적으로 지급한 교육생 복장이었다. 올 1월에 입사한 이들은 현재 상반기 합숙훈련과 하반기 직무별 전문교육을 거쳐 내년 현업에 배치된다. 곧 해양훈련을 받을 예정인데 '생존 수영법'도 배운다. 생존 수영은 평영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수영법으로 가장 오랫동안 헤엄칠 수 있다고 했다.

다리에 붕대를 감고 목발로 힘겹게 이동하는 신입요원이 눈에 띄었다. 헬기를 타고 700m 상공에 올라가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공수훈련을 하다 다쳤다고 한다. 가끔 부상자가 발생하는 공수훈련을, 군인도 아닌 이들이 왜 할까.

"정신훈련을 위한 것이다. 목숨을 걸고 뛰어내리면 국가에 대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교육 담당자의 대답이다.

서경호 기자<praxis@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