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뜻있게 보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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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는 6일은 구정, 다시 찾은 우리의 명절 「설날」이다. 더구나 사흘 연휴로 맞는 설이라 조상님들도 모처럼 마음 푸근히 차례를 받게 되었고, 어린이들도 때때옷 차려입고 푸짐한 세배돈을 받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설날처럼 많은 설움을 겪은 명절도 없을 것이다.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과 함께 1894년 공식적인 역법이 양력으로 바뀌면서 시작된 설날의 수난은 걸핏하면 2중 과세라는 죄목으로 엄벌을 받았는가하면, 나라가 광복된 뒤에는 하루속히 청산돼야할 구시대의 유물로 천대를 받아왔다. 서양의 명절이나 공휴일은 서둘러 수용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명절을 되찾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날에 대한 향수와 집념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대부분의 가정이 구정에 차례를 지낸 것이 그 동안의 실정이다. 그뿐 아니라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가는 철시했으며 중소기업체는 종업원들에게 사나흘의 휴가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지난 85년에 정한 것이 이른바 「민속의 날」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기간 농경생활을 해오는 동안 절후에 맞추어 각종 명절을 만들고 이에 따라 독특한 세시풍속과 민속놀이를 발전시켜 즐겨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음력 정월초하루인 설날은 한해를 새로 시작하는 날이라 하여 조상에게 차례를 올린 뒤 웃어른에게 세배를 드리며 온 가족들의 화목을 새롭게 확인했다. 그리고 이웃간에도 음식을 나눠먹으며 덕담 주고받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속인가.
지난번 서울 올림픽행사를 통해 세계는 우리 민족고유의 전통과 아름다운 예술에 대해 경이의 시선을 보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세월 산업화다, 경제성장이다하여 경황이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차분히 여유를 갖고 우리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 따라서 오랜만에 되찾은 이번 설을 어떻게 맞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전통을 되찾는 일이다. 그 하나가 「설빔」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님이 마련해준 때때옷을 벽에 걸어 놓고 빨리 설날이 오기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한복은 교도소나 요정에서 입는 옷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지나친 말인가. 설날에나마 자랑스럽게 한복을 입어보자.
또 하나는 세찬이다. 요즘 도시주부의 대부분은 차례음식을 슈퍼마킷이나 시장에서 만들어진 채 구입하는게 상례로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세찬만은 주부가 손수 만드는게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딸을 둔 집에는 이보다 더한 가정교육이 없다.
그리고 이웃간에 세배를 드리는 풍속도 더욱 장려하자. 어린이들에게는 어른을 존경하는 계기가 되고, 또 이웃간에 화목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들뜨는 것만은 곤란하다. 조상과 웃어른과 이웃을 섬기고 아끼는 우리 미풍의 날로 설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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