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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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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행을 값지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이다』고 「알베르·카뮈」는 그의 비망록에 적고 있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얼굴로 가득 찬 길모퉁이 카페에 앉아 식탁 위에 우연히 접혀있는 한국신문 한장이 주는 놀라움과 반가움은 곧 그만큼 자신이 낯선 문화의 공포 속에 있음을 실감시켜준다. 「카뮈」는 여행을 고행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엄격한 학문과도 같은 것』이 여행이라고 말했다.
낮선 풍습, 낯선 문화 속에서 뭔가 배우려는 여행자의 호기심에 찬 눈초리가 여행자를 피로하게 만들고, 여행을 값지게 만드는 것으로 여지껏 우리는 생각했다. 그것이 해외여행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어렵게 얻어낸 여권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길고도 지루한 반공교육과 여행수칙 강의도 외국에 간다는 흥분만으로 즐겁게 넘길 수 있었다.
이젠 그 어렵던 여권도 제주도 여행처럼 쉽게 발급되고 지루한 여행수칙 강의 따위도 사라졌다. 추운 겨울을 피해 열대의 동남아를 찾는 관광단이 줄지어, 떼지어 공항을 빠져나가고 통관대 앞을 빼곡히 메운 골프 투어용 가방들... 아! 우리도 이만큼 잘살게 되었는가.
동남아 어딜 가나 한국말이 통한다는 희한한 사실에 여행자들은 과연 서울 올림픽이 성공했구나 하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자, 사진 찍어요. 김치...찰칵』하며 사진사가 아양떨고, 『이건 3천원. 싸요, 싸』하며 장사꾼들이 보챈다. 이쯤 되면 한국인 관광객도 공포보다는 호기가 앞선다. 태국의 사원 안에 나체 모델을 세워놓고 예술사진을 찍는다고 법식을 떨고, 잠옷차림으로 호텔 복도를 누비고 다닌다.
공항 면세점을 떠들썩하게 흔들며 쇼핑에 열 올리고 코 물고 가래 뱉는 여행자, 심지어 점원의 눈길을 피해 슬쩍 집어넣는 여행자가 한국인 관광객 중에 있다면 이 무슨 추태인가. 70년대 초 동남아를 누볐던 일본인 깃발부대를 연상시키는 이 무분별한 해외관광이 어느덧 우리 차례가 되어버렸다.
서울 올림픽의 긍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언 손을 비비며 일하는 서러운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무작정 무분별한 향락성 해외 여행만은 삼가야한다. 뭔가를 배우고 뭔가를 얻기 외해 두려운 마음으로 떠나는 고행의 여행이 새삼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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