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자유·인권으로 양념되었다 … '열린 유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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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명들의 대화
뚜웨이밍 지음, 김태성 옮김
휴머니스트, 392쪽, 2만원

지난 100여년 간 동아시아는 서양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양의 과학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배우는 과정에 자신들의 전통은 뒷전으로 밀렸다. 전통의 대명사는 공자의 유교(儒敎). 이 책의 저자 뚜웨이밍(杜維明) 미 하버드대 교수는 그 잊혀진 유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계적인 이름을 얻었다.

1966년 이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장을 맡아오면서 저자가 씨름해온 화두는 '문명간 대화'였다. 신간 '문명들의 대화'는 그런 문제의식이 반영된 글 모음집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일본.미국과 한국의 독자를 상대로 했던 각종 강연.인터뷰 등을 모았다.

저자가 볼 때 생태환경 파괴, 테러, 핵전쟁 위협, 종교.지역 분쟁, 인간 관계의 단절과 소외 등은 현대인이 직면한 문명의 위기다. 근원에는 서양 근대의 계몽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잠자던 동아시아를 깨운 힘이었던 서양 계몽주의가 이제는 문명의 질곡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이다.

뚜웨이밍이 보는 유교는 군신 간의 상하 질서와 남녀차별을 전제로 한 유교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세계의 지성과 함께 호흡해온 저자의 현대적 유교 언어를 감상할 수 있다.

현대 유교는 서양 근대의 긍정적 요소인 자유.민주주의.인권의 가치를 흡수한 '열린 유교'여야 한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것과 같은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새겨야할 교훈이다.

이 책의 중국판 원서 제목은 '대화와 창신(對話與創新)'.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 종교와 종교 등 서로 다른 문명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내자는 것이다. 저자의 기대처럼 유교가 과연 기독교.불교.이슬람 등 각종 문명 간 대화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유교의 전통에 경전 해석권의 제한이 없다는 점을 저자는 장점으로 꼽았다. 문화 다원성이 허용될 수 있는 아량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1940년 중국 윈난성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자라며 현대 신유학(新儒學)의 거장이었던 머우종산.탕쥔이.쉬푸관의 훈도를 두루 받은 후 미국으로 유학해 68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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