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인재 채용, '간판' 보다 실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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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맞춰 기업의 인재 채용 패턴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채용방식은 특정한 시기에 대규모 공채를 통해 명문대 출신, 영어.학과성적 우수자, 무난한 인성을 가진 인재를 뽑는 소위 '그물형 채용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꼭 필요한 자리에 맞는 인재를 소규모로 채용하는 '낚시형'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주요 대기업은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 비율이 크게 줄어들고 지방대 출신이 늘어나는가 하면, 토익점수 기준도 낮추는 등 간판보다는 실력을 우선시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만큼 우리 대학 교육은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20년 된 낡은 강의노트 내용을 그대로 강의하는 교수들, 5년치 시험족보만 구할 수 있다면 A학점 따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대학 도서관에 가보면 절반은 토익, 나머지 절반은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 교육이 이러니 급변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본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이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해 실무에 투입하기까지 걸리는 재교육 기간은 30개월, 비용은 1인당 6200만원이 소요된다. 이를 사회 전반적으로 따지면 수조원이 신입사원 교육에 쓰인다는 얘기다. 재교육을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도 신입사원의 업무에 대해 60% 이상의 기업이 불만족을 표시했다.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대학 교육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공사 등 일류 직장의 신입사원 경쟁률은 수백대 1을 넘는다. 지원자 중에는 외국 유명 대학의 박사와 변호사.회계사 등 우수인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사담당자들은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면접시험에서 지원동기를 물어보면 모범답안을 미리 준비한 듯 대부분 천편일률적인 대답으로 일관하더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지선다, ○×, 토론 없는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인력의 질적 저하 현상이 심각하단 얘기다.

격변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기업들은 우수 인재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한 명의 천재가 1000명, 1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얘기는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대기업 총수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우수 인재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직접 삼고초려에 나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획일화.정형화된 대학 교육으로는 전문성과 창의성을 두루 갖춘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그렇다고 대학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만을 양성하는 인력 공급처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학교육의 기본목표는 무엇보다 현대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의 훌륭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다만 기본 소양에 더해 다양화.전문화돼 가는 산업계의 수요에 맞는 맞춤형 교육도 함께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직종.업종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과 관습, 그리고 제도는 학생들을 한 줄로만 세워 평가하거나, 평등주의 실현을 위해 나란히 세우려고 하는 편리한 관리주의에 매몰돼 있다. 이제는 대학 교육이 공공재로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형형색색의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무한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