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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와 쑤저우를 오가는 시진핑과 아베의 남자들…'트럼프의 역설'이 만든 중ㆍ일 화해

중앙일보

입력

“하늘에 극락이 있다면 땅엔 쑤저우(蘇州)가 있다고들 합니다. 편안히 쉬시다 가시길~”

지난달 '물의 도시' 쑤저우서 양제츠와 야치 회동 #작년엔 일본의 온천 휴양지 하코네에 만나기도 #아베 총리 25일 방중 앞두고 최종 협의 이뤄진 듯 #"앙숙이던 시진핑-아베 관계개선은 트럼프 때문" #트럼프 '친구'아베와 '적수' 시진핑이 의기 투합

지난달 말 ‘물의 도시’로 불리는 중국 장쑤(江蘇)성 쑤저우의 고급호텔에서 만난 중국의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에게 했다는 말이다.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 [중앙포토]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 [중앙포토]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두 사람의 만남은 양국 간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23일)을 맞아 이뤄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25~27일) 을 앞두고 최종 조율을 위해 이뤄졌다.

양국 정상의 측근들이자 외교 사령탑들이 나선 협의에서 아베 총리의 중국 내 일정이 대부분이 결정됐다. 협의가 중국의 지방 휴양 도시에서 1박 2일 간 개최된 건 극히 이례적이다.

당시 양제츠와 야치가 함께 산책을 하면서 '양국간의 민감한 외교 과제'에 대해 격의없이 토론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앞서 두 사람은 지난해 5월엔 일본 도쿄 인근의 대표적인 온천 휴양지인 가나가와(神奈川)현 하코네(箱根)에서 만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 외교 책사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중앙포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 외교 책사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중앙포토]

회담 장소는 하코네 일대에서 가장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아시노(芦ノ)호수 주변의 리조트였다.

회담장소는 야치 국장측이 골랐고,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포함해 5시간반에 걸쳐 비공개로 회담했다.

당시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이 양국 모두에게 골칫거리였다. 당시 야치는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양제츠에게 “대화한 다음엔 구체적인 해결책이 있느냐”며 제재 강화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만큼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

이번에 양제츠가 야치를 쑤저우로 초청한 건 그 답례였다.

작년엔 하코네에서, 이번엔 쑤저우에서 이뤄진 양국 외교 사령탑의 만남은 요즘 두 나라 사이의 화해 분위기를 상징한다.

두 사람의 파격적 회동엔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총리의 의지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스타트“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스타트“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역사문제 등 산적한 양국 간 현안은 일단 보류하고, 무역과 투자 등 세계적인 과제들에서 양국이 연계하는 새로운 단계의 양국관계를 만들어 가자"는 아베 총리의 ‘정경분리 모델’제안에 시 주석이 호응하는 모양새다.

2012년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일본이 국유화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던 양국 관계가 6년 만에 해빙 무드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중국과 일본 사이의 화해 무드를 촉발시킨 건 '아베 총리의 절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미국과 관세ㆍ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으로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일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은 23일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일본 내 우려가 2016년부터 생겨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강조한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탈퇴와 대 일본 무역 적자 삭감 목소리를 키우면서 일본내엔 위기감이 고조됐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밀감을 강조하는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일변도는 안된다"라는 우려속에서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심복'으로 불리는 경제산업성 출신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정무비서관 등이 “중국과의 관계개선은 아베 정권의 큰 외교 성과가 될 것”이라며 아베 총리를 움직였다.

결국 아베 총리는 과거 ‘중국식 패권주의’라며 반대했던 ‘일대일로(중국주도의 신 실크로드)구상’에 협력할 의사까지 중국에 전달했다. 그러면서 양국 간 화해 무드 조성엔 속도가 더 붙었다.

미국 국익 퍼스트를 외쳐온 트럼프의 존재 때문에 과거 앙숙이던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가 의기투합하는 ‘트럼프의 역설’ , 자신의 '절친' 아베 총리와 자신의 '맞수' 시 주석을 함께 묶은 건 트럼프 자신이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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