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시절부터 전두환씨 "오른팔"|구속된 장세동씨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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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구속된 장세동 전 안기 부장은 5공화국 시절 「후계자」「제2인자」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권부의 중심에 자리잡았던 핵심중의 핵심 인물.
정부가 전두환씨 부부의 사법 처리 배제 방침을 정한 뒤 사실상 5공 비리 수사의 최후 목표 인물로 소환, 구속이 시간 문제였던 장씨는 『5공화국은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영원한 빚인 전씨의 성은에 보답키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전두환교」의 맹신도 이자 분신.
장씨의 혐의 내용은 일해 재단 설립 및 강제 모금, 운영 과정 비리, 몇건의 직권 남용이 주요 내용이지만 이보다 5공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데 기여한 종횡무진의 「활약」 모두가 국민들의 지탄 대상이었다.
인명록에는 장씨에 대해 그의 화려한 경력과는 걸맞지 않게 생년월일·출생지·학교 및 역임 직책이 간단히 기재돼 있다.
「정보통」으로서 자신의 비밀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갑자기 부상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장씨는 36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어릴 때 상경한 뒤 49년 서울 돈암 국교를 거쳐 성동 공업 중학 (현 성동 기계 공고)에 입학했다.
6·25가 나자 부산에 갔다가 고향인 고흥에 내려가는 등 유전 끝에 7년만에 중·고교를 마쳤다.
「말수가 적고 영리하며 침착했다」는 장씨는 56년 육사 16기로 입학, 60년 보법소위로 임관했다.
장씨는 65년 대위로 진급하면서 세번이나 월남에 갔으며 당시 금성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장씨는 월남전에서 쇄골이 부러지는 관통상을 입어 병원에 임원중 위문간 전씨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져 20년간의 「심복」 관계가 시작됐다.
특히 71년 전씨와 함께 월남에 파병돼 함께 타고 가던 헬기가 적진 가까이에서 추락,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단순한 상하 관계 이상의 혈육에 버금가는 끈끈한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
이때 장씨는 전씨의 행선지 등을 수시로 체크하여 가담 장군들에게 보고하는가 하면 당번 실을 들락거리며 외부와의 연락을 취하는 부관 노릇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12·12」 직후 특전사 작전 참모로 옮긴 장씨는 80년1월 준장으로 진급, 광주 사태와도 인연을 맺게 됐으며 전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인 81년7월9일 경호실장에 임명됐다. 동기생 중 선두 주자로 83년10월 소장이 됐으며 84년10월 중장 진급 후 두달만에 보국 훈장 통일장을 받고 예편했다.
장씨가 경호실장 재직 중 부딪친 가장 큰 사건은 버마 아웅산 폭발 참사로 이 사건 직후 대폭 개각 때 의당 물러났어야 했으나 유임됨으로써 전씨의 장씨에 대한 신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이때 「유임」이 전씨에 대해 충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85년 2·12 총선 후 1주일만에 안기부장에 중용 됐다. 장씨는 대통령 경호실장 말기부터 초기의 순수한 경호 업무 수행을 넘어 점차 대통령의 비공식적인 정치인 접촉 등을 심부름하고 군부 인사에 개입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장씨가 안기부장 재직 때는 5공 말기로 말썽 많은 관계 기관 대책 회의 등 정권 말기적 병리 현상이 분출 될 때였다.
85년 학원 안정법 파동·고대 앞 시위 사건, 86년 「5·3」 인천 사태·부천서 성 고문 사건·유성환 의원 구속·건국대 점거 농성자 대량 구속, 87년 박종철군 고문 치사 및 범인 은폐 축소 사건·「4·13」 호헌 조치 등 정권에 치명적인 굵직굵직한 시국 사건 때마다 장씨는 초 강경 대처를 주장했다.
이 때문에 87년 신민당 개헌 현판식을 방해한 「용팔이」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고 있고, 부천서 성 고문 피해자 권인숙 양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사건의 증인으로 신청돼 구인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또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논란이 됐던 「88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준비 연구」에서 언급된 후계자 조건을 놓고 장씨가 「포스트전」을 노렸을 거라는 소문도 5공 말기에 파다했었다.
장씨는 자신의 강경 이미지에 대해 『권력의 핵심에서 사회 안전을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다보니 그런 인상을 준 것 같다』고 밝힌바 있다.
최근 전국민의 관심 속에 벌어진 청문회에서 말쑥한 언행과 당당한 태도로 「논리」를 편 장씨는 『5공을 대표해서 나를 속죄양으로 삼는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다』 『내가 입을 열면 모두가 불행해진다』고 큰소리쳤던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재판 진행 과정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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