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제재로 인민 존재 제한" 연일 노골적 해제 요구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2018 국제 평화포럼 :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만찬행사에서 김성 북한 유엔대표부 대사가 건배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2018 국제 평화포럼 :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만찬행사에서 김성 북한 유엔대표부 대사가 건배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유엔에서 지속적으로 제재 완화를 촉구하고 있다. ‘장외’에서는 중국,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김 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지난 9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2위원회(경제·금융·개발 담당)에서 “대북 제재로 인민의 존재와 개발 권리가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고 호소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9일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김 대사는 “필수 약품과 엑스레이 장비 등 인도적 원조 품목들의 운송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로 금지돼 있다”며 “이런 물품들은 어린이와 여성 등 인민들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사는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논리로 유엔의 ‘지속가능 개발목표(SDGs)’까지 꺼내들며 “제재 때문에 이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고도 했다. 또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경제적 환경은 여전히 최악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도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핵·미사일)시험 중지 1년이 되지만 제재결의들은 해제나 완화는 커녕 토 하나 변한 게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제재가 우리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미국이 신뢰조성에 치명적인 강권의 방법에만 매달리고 있다”면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7일 네 번째로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면담했을 때도 제재 문제가 거론됐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직접적으로 원활한 비핵화 조치를 위한 제재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평양 공동선언에서 북한이 거론한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의 핵심이 제재 완화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의지를 밝힌 올 초만 하더라도 제재 문제는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제재로 인한 고통 때문에 대화 테이블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협상에 임하게 된 것이라는 논리로 일관했다.

하지만 본격적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며 이처럼 제재 해제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북한 내부적 동인이 필요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일부 제재라도 해제돼야 내부적으로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추진하는 명분이 생긴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또 실제로 김 위원장이 공언한 경제 개발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제재 해제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최근 북·중·러가 이례적으로 3국 차관 협의를 열고 “제때 대조선 제재를 조절하라”고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도 21일까지 이어지는 유럽 순방에서 지속적으로 비핵화 촉진을 위한 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내 북·러 및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이를 통해 제재 문제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우군화하려는 전략을 펼칠 전망이다.

한편 북한은 지난 12일 열린 유엔총회 제6위원회 회의에서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또다시 주장했다고 VOA가 19일 전했다. VOA에 따르면 당시 김인철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서기관은 "긴장 완화와 평화를 향한 한반도 상황 전개에 근거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유엔사는 해체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도 지난 9월 29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사는 북남 사이의 판문점 선언 이행까지 가로막는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