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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였다! 트럼프가 시진핑에 모욕감 느낀 이유

중앙일보

입력

파키스탄에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ㆍ해상 뉴실크로드) 프로젝트가 휘청하고 있다. 자의반타의반 중국서 돈을 많이 빌려오더니, 결국 지난 9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키로 결정했다.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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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은 일대일로의 핵심 전략국가다. 파키스탄 과다르항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카스까지 연결하는 3000km에 달하는 경제회랑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경제회랑을 따라 철도ㆍ도로ㆍ송유관ㆍ광케이블이 깔리고 과다르항에 산업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중국, 중앙아~인도 가스관 사업 참여 타진 #일대일로의 핵심파트너 파키스탄 역할 주목 #'인도 가는 길' 놓고 19세기 그레이트게임 #선수 바뀐 21세기판 미중 신그레이트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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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순탄하게 궤도에 오르면 중국 경제권과 접속된다. 파키스탄 경제엔 게임체인저급 변화를 몰고 올 것이란 장밋빛 전망 속에서 파키스탄은 중국에 돈을 빌려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국토를 종횡으로 달리는 총 620억 달러(약 70조원)의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460억 달러는 중국ㆍ파키스탄 경제회랑 등 중국과 관련된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일대일로 전체 사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문제는 파키스탄의 재정 능력이다.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인프라 건설에 과도한 투자를 하는 바람에 결국 빚의 덫에 걸렸다. 상환능력을 넘어서는 초대형 투자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2018년 9월말 기준 파키스탄의 외환보유액은 84억 달러(약 9조5100억원)를 밑돌고 있다. 이래서는 수입품에 대한 지불 불능 사태를 면키 어렵다. 심각한 것은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외환보유액은 214억 달러였다. 반면 국가부채는 감당이 어려운 지경이다. 보유 외환의 배인 564억 달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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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와 경상수지 적자를 고려할 때 파키스탄이 필요로 하는 구제금융 규모가 적어도 120억 달러(약 13조656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재정위기에 몰렸지만 경제회랑 사업은 파키스탄으로선 접기 힘든 사업이다. 경제활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딜레마에 빠진 파키스탄. 사업 재검토 기류가 돌자 중국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9월 9일 중국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를 만나 사업의 속도조절과 중국 민간 부문의 투자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이 파키스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상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중국은 물류와 에너지 수송의 대부분이 해상을 통해 이뤄진다. 해상 수송은 변수가 많고 무엇보다 대미 관계 악화시에 해상 봉쇄에 노출돼 치명타를 입는다.

에너지와 물류 수송망의 다각화는 시진핑 지도부가 중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는 중대 사안이다. 중국은 과다르항을 통해 페르시아만의 원유를 서남ㆍ동남아시아를 거치지 않고 수입할 수 있다. 또한 과다르항을 통해 육로로 실어 나른 자국 상품을 수출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표면상 알려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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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못지 않게 일대일로 사업의 확산과 완성이라는 큰 그림에서 파키스탄의 숨겨진 역할이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에 인도를 포섭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역내에서 전략 경쟁자인 인도는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중국은 집요하게 인도를 향해 구애하고 있다.

2018년 4월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5회 인도ㆍ중국 경제대화의 이슈는 인도의 일대일로 참여였다. 중국은 끈질기게 요청했지만 인도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중국과 대척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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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브 쿠마르 인도 국가경제정책기구 부위원장은 중국이 일대일로의 장점만 부각하고 있지만 인도는 주권 침해 요소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 이 인도ㆍ파키스탄 간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를 지나기 때문에 인도의 주권을 해친다는 것이다.

천연가스로 중국과 인도 연결?

이 지점에서 중국이 갈고 닦는 카드인 파키스탄의 역할이 부각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란으로부터 원유 수급이 원활치 않아 대체 에너지 확보가 절박한 처지다.

중앙아시아·중동에서 중국·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해온 미국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른바 TAPI 가스관이다.

TAPI 가스관 개념도 상류인 투르크메니스탄의 사쉬가바트 가스전에서 출발해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를 거쳐 파키스탄중앙 지역을 통과해 인도까지 연결된다. [사진=힌두타임스]

TAPI 가스관 개념도 상류인 투르크메니스탄의 사쉬가바트 가스전에서 출발해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를 거쳐 파키스탄중앙 지역을 통과해 인도까지 연결된다. [사진=힌두타임스]

카스피해에 연접한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 4위의 천연가스 매장국이다. 미국은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를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과 인도로 수송하는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TAPI) 가스관’을 추진해 왔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에서 북쪽으로 260km 떨어진 카라쿰 사막 한복판에 있는 불타는 구멍. ‘더웨즈’(Derweze·문이라는 뜻) 혹은 ‘다르바자’로 불린다. 천연가스가 새어나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사진=셔터스톡]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에서 북쪽으로 260km 떨어진 카라쿰 사막 한복판에 있는 불타는 구멍. ‘더웨즈’(Derweze·문이라는 뜻) 혹은 ‘다르바자’로 불린다. 천연가스가 새어나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사진=셔터스톡]

TAPI는 약 1814㎞길이의 수송관 건설 프로젝트로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연간 330억㎥의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42%를 받고 나머지 58%는 아프가니스탄 몫이다. 아프가니스탄은 TAPI 프로젝트의 허브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 나라의 정정 안정은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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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혼란으로 사업 진행이 순탄치 않았지만 2020년 완공을 목표로 가능한 구간부터 가스관을 깔고 있다. 아프간에선 가스관 건설 인부들이 공격을 받아 숨지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어 막판까지 변수가 되고 있다. 최근 미국과 탈레반이 접촉을 시작하고 있어 아프간 안정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중국은 지난 8월 파키스탄을 통해 TAPI 참가를 타진했다. 파키스탄을 지나가는 가스관에 ‘빨대’를 꽂듯 별도의 연결관을 통해 투르크메니스탄 천연가스를 공급받겠다는 것이다.

카스피해의 투크르메니스탄 가스, 일대일로의 게임체인저

이렇게 되면 중국도 TAPI의 일원으로 인도와 일대일로의 연장선에서 경제적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따라서 중재자로서 파키스탄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에너지 확보에 사활적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도가 TAPI 프로젝트로 묶여 있다는 점에서 파키스탄이 중국과 인도를 중재할 수 있는 입지에 있는 것은 중국으로서 놓칠 수 없는 기회 요인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의 의도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인도가 펄쩍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일간지 더스테이츠맨은 8월20일자 보도에서 뉴델리 당국은 중국의 TAPI에 대한 접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TAPI 뒤에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더 크게는 일대일로 전략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TAPI의 배후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미국의 전략과도 충돌한다.

미국이 노리는 TAPI의 전략 구도를 비틀고 들어온 중국. 미국의 TAPI에 대한 노림수를 중화권 언론의 분석을 종합하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투르크메니스탄 가스가 추가로 중국에 공급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효과다. 현재 중국은 연간 850억㎥의 가스를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둘째, 러시아의 가스시장 통제력 약화다. 러시아는 중국에 팔고 남은 투르크메니스탄산 가스를 싼 가격에 받아 유럽에 팔아 왔다. 물량이 줄어들면 시장 지배력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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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경제이익 공동체로 묶어 반테러 전선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지렛대가 TAPI다. 또한 인도에 대한 중국·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과 러시아의 에너지시장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면서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반테러전의 아군으로 포섭하고 인도까지 미국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는 중앙·남아시아 전략의 핵심이 TAPI인 것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육상과 해상을 두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핵심은 육상로다.

일대일로 전략의 단초가 말라카 해협에 의존하는 무역·에너지 수송로에 대한 대체 루트를 찾겠다는 데서 출발한 이상 해상 루트는 육상로에 대한 보조 역할 이상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육상로 개척의 첨병은 고속철도다.

고속철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면서 해상 운송과 경쟁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바다 운송로를 장악한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이자 대항해시대 이래 서구의 부상을 이끈 해상 운송을 육상 운송으로 전환하겠다는 패러다임 체인지를 노리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안보는 러시아에 의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반면 인도는 북서쪽은 험준한 산맥이 막고 있고 동쪽은 밀림에 덮혀 있어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으로부터 고립돼 있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아대륙(subcontinent) 얘기를 듣는 이유다.

힌두쿠시 산맥 [사진=셔터스톡]

힌두쿠시 산맥 [사진=셔터스톡]

중국은 터널을 뚫고 길을 내고 고속철을 깔아 인도까지 접속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는 파키스탄을 통해, 다른 하나는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사이드를 통해 인도로 들어가는 혈로를 뚫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밀림 [사진=셔터스톡]

방글라데시의 밀림 [사진=셔터스톡]

아래 그림을 보면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6개 경제회랑 가운데 2개가 인도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구글 이미지]

[사진=구글 이미지]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지정학을 둘러싼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는 것일까.

인도로 가는 길을 놓고 벌인 대륙세력인 러시와와 해양세력 영국의 공방전이 이른바 19세기 그레이트 게임이다. 21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의 구도는 같다. 바다와 육상세력의 대결이다. 선수만 미국과 중국으로 바뀌었다.

   19세기 영국령 인도와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지도. 아프가니스탄은 두 세력의     충돌을 막는 완충지였다. [사진=아시아리포트]

19세기 영국령 인도와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지도. 아프가니스탄은 두 세력의 충돌을 막는 완충지였다. [사진=아시아리포트]

그레이트 게임의 관점에서 일대일로를 보면 이 전략이 겨냥하는 목표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바로 인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요 감소가 일어나 중국의 과잉생산된 철강·시멘트·화학제품·선박 등 재화들이 팔릴 곳을 못찾아 항구 야적장에 쌓이고 있다.

인도로 가는 길을 닦고 인도에 연결돼 넘쳐나는 재고를 소진할 수 있게 되면 중국은 산업을 고도화시킬 사활적인 시간을 벌게 된다. 생산량을 줄이면서 산업 구조조정에 집중하면서 첨단산업을 키워 2035년쯤 현대화된 산업국가로 탈바꿈하겠다는 것 아닌가.

인도 시장을 육해상으로 연결하면 미국 일변도의 수출 구조도 다각화시킬 수 있다. 모두 인도로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일대일로 전략의 노림수가 이렇게 인도를 겨냥하고 있는 모양새라는 점에서 미국의 대응도 전면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ㆍ일 군사동맹과 인도의 안보협력을 통해 균형을 맞추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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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중국이 인도를 끌어들여 인도의 대중국 정책이 중립화되면 미국의 아시아 전략도 요동칠 수 밖에 없다. 균형추로서 인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이렇게 심대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8월 7일(현지시각) 미국 13개 기업 CEO를 만찬에 불러놓고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세계 무역을 방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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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욕적이라고 했을까. 인도는 냉전시대 러시아와 깊은 교감을 나누던 나라였다. 미국은 탈냉전 시대에 인도를 미국의 세계 전략 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클린턴 행정부-부시 행정부-오바마 행정부 등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 집권을 하면서도 대인도 정책은 일관성을 보였다. 그 인도를 향해 시진핑의 일대일로망으로 접근하자 트럼프가 발끈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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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확대개편하면서 안보차원에서 인도·태평양전략을 구체화시킨 것도 이런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일대일로의 성패는 어쩌면 인도 주변에서 결정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나 중국의 아라비아해 출로인 파키스탄이 부채의 덫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에 빠졌다는 뉴스가 얼마나 중국 당국의 심기를 어지럽힐지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차이나랩 정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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