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기운 불어넣는 사진관, 수작업 고집하는 대장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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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 신촌에서 50년 넘게 운영 중인 미도사진관 강일웅 대표.[임선영 기자]

서울 신촌에서 50년 넘게 운영 중인 미도사진관 강일웅 대표.[임선영 기자]

‘오래된 가게가 오래 가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은 ‘오래가게’. 서울시가 최근 선정한 ‘오래가게’ 26곳 중 10곳은 서대문구에, 2곳은 은평구에 있다. 이들 모두 개업한 지 30년 이상이 됐거나 2대 이상 전통을 계승한 가게들이다. ‘젊음의 거리’ 신촌이 있는 서대문구에선 사진관·서점·분식집, 학사복 전문점 등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다양한 업종이 선정됐다. 은평구의 2곳은 모두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대장간이 뽑혔다.

서울 ‘오래가게’ <하>서대문·은평 #승무원 필수 코스 신촌 미도사진관 #1970~80년대 문청 아지트 독다방 #은평의 터줏대감 형제·불광 대장간 #서점·분식집 등 다양한 업종 선정

지난 8일 서울 지하철 신촌역 1번 출구로 나와 3분쯤 걷자 미도사진관이 나왔다. 1967년 문을 연 이곳은 2000년대 초반 ‘승무원 사진관’으로 유명했다. 많은 승무원 지망생들이 항공사 지원서에 낼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왔다. 사진관 벽면엔 승무원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미도 사진관의 주인 강일웅(80)씨는 “명예의 전당”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사진관에서 증명 사진을 찍고 합격한 사람들이에요. 승무원 복장으로 다시 찾아오면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고 허락 맡고 이렇게 걸어둔 거랍니다.” 국내 모 항공사의 합격생 53명 중 21명이 이곳에서 증명사진을 촬영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강씨는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취업 준비생들을 포함해 많을 땐 하루에 120명 정도 됐다”고 회상했다.

미도사진관이 이처럼 증명사진으로 인기를 끈 건 그가 개발한 ‘특수렌즈’ 때문이었다. 그는 사진을 인화할 때 이 렌즈를 활용해 얼굴형을 ‘재탄생’시켰다. “실제보다 날씬하게 보이는 거울의 원리를 렌즈에 적용했어요. 동그랗거나 긴 얼굴을 알맞은 비율로 갸름하게 만들었지요.”

그가 카메라를 잡은 지도 65년이 넘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사주신 카메라가 그에게 꿈을 심어줬다. “사진에 푹 빠져 살았어요. 집에 암실을 만들었을 정도였어요.” 부산대 재학 시절엔 사진부 활동을 하며 실력을 다졌다. 휴대전화 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사진관을 찾는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는 수십 년째 지키는 소신이 있다. ‘증명사진은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 실물과 가까워야한다’는 점이다. “가끔 포토샵 처리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손님들이 있는데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한 손님은 ‘실물과 너무 다른 사진을 지원서에 냈다가, 면접관이 면박을 줬다’면서 제게 다시 찍으러 오기도 했었어요.”

서울시 선정 오래가게

서울시 선정 오래가게

이외에도 서대문구에는 9곳의 오래가게가 있다. 1971년 음악다방으로 문을 연 독다방은 1970~80년대 대학생들의 아지트로 통했다. 소설가 성석제, 시인 기형도 등 문인들의 단골집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5년 문을 닫기도 했지만, 2013년 같은 자리에 다시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김정희(86)씨의 대를 이어 현재 손자 손영득(36)씨가 운영하고 있다.

1987년 개업해 올해 31주년이 된 빵집 피터팬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있다. 프랑스산 천연 발효종과 같이 좋은 재료를 고집하면서 ‘장발장이 훔친 빵’ ‘아기 궁댕이’와 같이 개성있는 빵 이름으로 20~30대 젊은층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고궁·사찰 등의 대문, 한옥 난간대 등을 만드는 태광문짝(1985년 개업), 3대에 걸쳐 학위복을 제작하는 춘추사(1955년) 등이 뽑혔다.

손으로 두드려 농기구를 만드는 은평구 형제 대장간. [임선영 기자]

손으로 두드려 농기구를 만드는 은평구 형제 대장간. [임선영 기자]

은평구의 오래가게 2곳은 모두 대장간이다. 쇠를 달구어 낫·호미·칼 등의 연장을 만든다. 형제대장간은 상호처럼 형제 류상준(65)·류상남(62)씨가 운영한다. 형 상준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대장간 일을 배워 1976년 대장간을 개업해 혼자 일하다가 96년 동생 상남씨와 의기투합했다. 상준씨는 “좋은 쇠를 고르는 게 시작이다.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고, 무르면 잘 들지 않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1963년 개업한 불광대장간의 주인은 아버지 박경원(80)씨와 아들 박상범(50)씨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한지는 올해로 26년째다. 상범씨는 “아버지에게 배운 철칙은 주문 물량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에 정해진 만큼만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 욕심을 내서 많이 만들면 한 개를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이 줄어 품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5년 쓸 연장을 정성을 쏟으면 10년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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