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탕감' 구제 급증…과소비·주식투자 파산자도 면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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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빚 때문에 지난해 이혼당하고 파산자가 된 金모(33.여)씨.

회사원인 남편의 변변찮은 월급을 생각 못하고 신용카드로 옷이나 가전제품.장신구 등을 마구 산 게 화근이었다.

빚을 막느라 '카드깡'을 시작했고, 빚은 더욱 커져 32명의 빚쟁이에게 갚아야 할 원금만 2억3천만원이 됐다. 2002년 2월 이혼당했고, 시누이에게서 빌린 1천만원을 못갚아 사기전과자까지 됐다.

지난해 파산 신청을 해 받아들여졌지만 수입이 생기는 족족 빚쟁이들에게 빼앗겨야 하는 절망적인 처지가 무서워 자살도 생각했다. 하지만 미숙아로 태어난 막내 아들 때문에 그나마 포기했다.

그런 金씨가 지난 8일 여태까지 진 모든 빚을 청산하게 됐다. 서울지법 파산1부가 '면책'결정을 내려준 것이다. 면책이란 개인 파산자에 대해 남은 채무를 탕감하고 복권시켜주는 제도다.

1심에서 거부됐던 면책 신청이 항고심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남편에게 위자료도 못 받고 이혼당한 점, 병든 아들을 어렵게 양육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는 게 이유다.

金씨는 "이제 돈을 벌어도 압류될 걱정이 사라지게 됐다"면서 "취직해 새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카드빚 자살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가운데 파산자들을 면책해주는 법원의 결정이 크게 늘고 있다.

2001년 75%, 지난해 87%였던 면책 허가율이 올들어 8월 현재 93%로 껑충 뛰었다. 건수로 따져 서울지법 파산부가 올들어 지난 8월까지 면책결정을 해준 사람은 3백23명. 지난해 같은 기간(93명)의 네배에 가깝다.

"파산자를 갱생시켜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과 사회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취지가 법원에서 반영되는 것이다.

과도한 주식 투자로 파산한 사람에게 빚을 90% 탕감해준 결정도 최근 있었다. 4년 전 주식에 손댔다가 1억6천여만원을 빚진 회사원 李모(34)씨의 경우다.

李씨는 1심에서 "현금서비스까지 받아 무리하게 투자를 한 책임이 크다"는 이유로 졌지만, 2심 재판부는 "재취업하려 해도 주민등록이 말소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90%의 면책 결정을 해줬다.

면책 결정은 '채무자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강하다. 소비자 파산 전문 변호사인 김관기 변호사는 "특히 요즘 같은 때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면책제도는 적극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적지않아 논란을 부르고 있다.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 등이다.

강희철 변호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파산을 쉽게 생각하거나 무분별한 소비가 조장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너도나도 면책을 받게 되면 성실히 이자를 납부하는 다른 채무자들이나 선량한 채권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 "재산을 은닉하거나 채무를 부풀리는 등의 '얌체 파산자'들을 잘 걸러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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