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자녀교육 떠맡은 "고3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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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방학중 과외허용」이라는, 80년에 내려졌던 중-고생들의 과외 전면금지조치가 일부 완화되면서 곧 고 3으로 진급할 아들이 있는 주부 홍미자씨(47·서울 종로구 수송동)는 불안해하고 있다.
『아이가 친구들이 과외를 한다고 걱정할 때 우리부부는 너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과외금지가 풀려남은 방학기간에나마 과외를 시키려니까 선생 찾기가 힘들고 대학생도 1주 2∼3회에 30만∼40만원으로 비용이 엄청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알고 보니 어지간한 가정에서는 벌써부터 학원수강·대학생 선생 등으로 과외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아들한테 미안했고 과외를 국가에서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론만 고집하던 남편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한다. 이미 홍씨는「어머니 고 3병」에 돌입한 것이다.
홍씨뿐 아니라 고3이 되는 자녀를 가진 어머니들은 예외 없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이제 자녀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현대 핵가족의 아내에게 떠맡겨진 책임이 되었고 자녀교육의 핵심은「일류대학 합격」으로 좁혀진다.
사실상 오늘날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한 대장정은 어린아이가 3, 4세 되는 무렵부터 시작된다. 치열한 생존경쟁에 현대의 상업주의가 결탁해 이루어진 현상인 것이다.
즉 3, 4세 된 자녀를 가진 엄마는 집중적으로 유아 지능개발교재 판촉의 대상이 된다. 지능개발을 위한 교재·장난감·책·잡지들이 수없이 만들어져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한국엄마들」을 상대로 팔려 나간다.
자녀들이 5, 6세가 되면 잚은 엄마들은 정서교육과 학교에서의 음악·미술성적을 올리기 위한 피아노·미술 개인지도의 유혹을 받게 된다.
이어 서울의 경우 자녀가 국민학교 상급반에 이르면 강남, 특히 제8학군을 향한 거주지의 대이동이 시작된다.「좋은 학군의 중-고교를 다녀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결혼이후 13년간 공기 좋고 교통이 편리하여 서울 종로구 평창동 단독주택에 살아온 민애순씨(45·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아파트)는 남편의 반대를 무릎 쓰고 큰딸이 6학년이 되던 85년 강남 입성에 성공(?) 했다.
『시가나 친정어른·친구들 모두 강북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대학 가기 어렵다고 주장하니까 자신이 없어지더군요. 여쭙지 않은 내 소신 때문에 아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 아닌가 싶어 결심했습니다』고 민씨는 얘기한다.
오늘날 대부분 가정의 교육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치열한 사회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일이고, 그것은 공부를 잘해 일류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직장 일에 쫓겨 정보 부족인 남편을 대신하여 아내는『공부 잘하는 것이 효도』라고 강조하며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을 다그치고 몰아대며 학업 성취에 몰두한다. 인간교육은 뒷전이다. 이러한 현실은 월간『2000년』이 87년 서울시내 1천9백 명 부모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부모와 자녀갈등의 70%가 공부문제 때문이라는 사실과도 일치한다.
또한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학벌이『결혼과 취업을 통한 신분 상승의 유일하고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백명희 교수(이대·교육학)는 학력위주의 사회구조와 한국인의 과감한 의식 변화 없이는 해결이 요원하다고 말한다. <박금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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