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 이공계 연구소 이과생만 가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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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과학기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과학의 일터'는 낯설다. 때문에 각종 이공계 연구소에는 과학기술 전공자들만 일하는 것으로 알기 쉽다. 그러나 이들 연구소도 인사와 예산, 기획 등 지원업무를 하는 인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다. 특히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무원 못지않은 대우를 받는다. 일자리도 안정적이다. 정부출연연구소 14곳이 몰려 있는 대덕연구단지에 최근 둥지를 튼 5명을 만나 연구소 취업 동기를 물어봤다.

◆대기업 연봉에 안정적인 일자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총무팀의 이윤선(26)씨는 올 3월 100여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정부출연연구소를 목표로 취업을 준비했고, 첫 응시에서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기숙사에서 생활 중인 이씨는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가 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을 만나는데, 종종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맞먹는 3000만~3500만원의 초봉을 받고 중도 퇴직의 걱정이 적기 때문이다. 연구소 인력은 50대까지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닐 수 있다. 선임급은 58세, 책임급은 61세가 정년이다. 상대평가를 통해 고과 'D'를 받지 않으면 정년이 보장된다. 준공무원인 셈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보지원팀의 김태균(31)씨는 지난해 경력 기술직으로 취업했다. 그는 인하대 자동화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과 벤처기업 두 곳에서 전산직으로 일했다. 수도권에서 계속 일하다 연고도 없는 대덕에 내려온 이유에 대해 그는 "벤처 기업에서 근무할 때 고용 불안감을 자주 느꼈다"고 말했다.

◆과학에 취미 있는 사람들=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홍보협력실의 '새내기' 이동우(29)씨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일을 하게 돼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니던 이씨는 2003년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무작정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때 볼리비아에서 자원을 놓고 벌어진 데모 행렬을 보고 에너지 현안에 푹 빠졌다. 그는 귀국한 뒤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봐 이공계로 진학할 생각도 했다. 에너지 관련 책을 두루 읽으며 기초 이론을 배워 120 대 1의 경쟁을 뚫었다.

◆조연이 좋은 사람들=정부출연연구소의 지원인력은 전체의 10~20% 수준. 연구직이 연구소의 주연이라면 지원인력은 조연이다. KISTI 회계팀의 장희원(27)씨는 이모저모 따져보고 올 초 조연을 택했다. 전북대를 나오고 정보통신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장씨는 "연구직의 대부분이 회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게끔 장부 정리는 내가 한다"고 말했다. 장씨는 연구 관련 경비 등을 정리하느라 종종 밤 늦게까지 일한다. 그는 "정부출연연구소 직원들이 정시 퇴근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맡는 일마다 다르지만 회계부서는 9시 넘어야 퇴근한다"고 말했다.

◆도심이 싫은 사람들=에너지연구원 연구관리과에 둥지를 튼 이석락(28)씨는 정부출연연구소를 택한 이유에 대해 "서울이 번잡해 내려왔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한 경제단체에 다니다 올 3월 전직했다. 연구원 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씨는 "남는 시간은 여가생활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일과 후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골프를 배우고 있다. 연구원 신입사원 연수 때 대청댐에서 연구원까지의 40㎞를 걸어갔던 일도 도심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단다. 이씨는 "스스로 노력하면 연구원에서도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고 연수 등 자기계발 기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정부출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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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대졸 초임은 얼마나 되나요.

A:"연구기관별로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첫해 대략 3000만~35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매년 고과에 따라 연봉 계약을 다시 해야 한다."

Q:승진은 어떻게 되나요.

A:"9년 정도 지나면 선임급으로 승진할 수 있다. 군복무 기간을 인정해 남자의 경우 6~7년이면 승진이 가능하다. 또 10년 정도 근무하면 대기업체 이사급인 책임급에 오를 수 있다. 3년 연속 최하위의 고과를 받으면 해고 사유가 된다. 포상 실적이 있으면 승진에 도움이 된다."

Q:복리후생은 어느 정도인가요.

A:"독신자의 경우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다. 대덕연구단지 내 복지센터를 통해 골프장 이용도 반값에 할 수 있다. 헬스클럽과 탁구장 등 체육시설을 갖춰 놓은 연구기관이 많고, 원내 동호회도 다양하다."

Q:해외 연수도 갈 수 있나요.

A:"책임급 이상은 1년 정도의 연구연가를 갈 수 있다. 해외협력기관에 파견을 나갈 수도 있다."

Q:연구직으로의 전환도 가능한가요.

A:"가능하다. 매년 직종 변경 시험을 쳐서 연구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 대신 해당 전공 분야의 석사 또는 박사 학위를 따야 한다. 기술직으로도 바꿀 수 있다."

면접이 가장 중요

연구소 정보 알고 가야

경쟁률은 100대 1 넘어

정부출연연구소의 입사 전형은 서류전형과 필기시험.면접시험 등으로 이뤄진다. 연구소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면접을 가장 중시한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이석락씨는 "면접시험을 보기 전에 해당 연구소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면접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인성을 살피는 질문이 많다.

올 초 에너지연구원의 실무진 면접에선 '원하지 않는 일을 보직으로 받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공기업 직원의 소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등을 물었다. 지원서류 접수도 인터넷보다 우편이나 직접 접수를 원하는 곳이 많다. 4년제 대학 출신으로, 토익 영어점수가 700점 이상이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학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취업경쟁률은 상당히 센 편이어서 100~150 대 1에 이른다. 지난해 정부 출연 24개 연구소가 뽑은 행정.기술직은 모두 110명. 올해는 모두 몇 명을 뽑을지 확정되지 않았다.

또 인력 필요에 따라 사람을 뽑기 때문에 채용 시기도 정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합격자는 취업정보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다음 카페의 '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취업 뽀개기'가 대표적인 길잡이다. 대학 내 취업 게시판 사이트를 보고 응시한 사람도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취업정보를 가장 빨리 얻었던 대전 지역 대학 출신이 많이 합격했다. 박종덕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총무과장은 연구소 근무자세와 관련해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연구소 생활을 견뎌내기 힘들다"며 "정부 과제를 추진하고 있는 현장인 만큼 국가에 대한 봉사정신과 조직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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