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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 국회 분원을” 공무원 서울출장 연 67억 낭비 줄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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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종시 국회 분원 의원들 생각은 찬 100명 반 52명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부터)가 9일 한글날 경축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오는 22일 세종시 국감에서 국회 세종 분원이 논의될 예정이다. [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부터)가 9일 한글날 경축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오는 22일 세종시 국감에서 국회 세종 분원이 논의될 예정이다. [뉴시스]

정부세종청사가 비어 있다. 정기국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중앙 행정부처 장관과 국·과장들은 국회에 있다. 세종시에는 중앙정부 18개 부처 중 11개가 이전했다. 내년에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까지 세종시로 옮기면 서울에는 외교부·통일부·법무부·국방부·여성가족부 등 5개 부처만 남는다. 중앙 행정부처 대부분이 국회와 떨어진 세종시에 입주하면서 행정부 간부들이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회를 옮기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방법은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는 것이다. 행정부 간부는 부하 직원들과 떨어지면서 업무가 중단되지만, 국회의원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동 비용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분원 찬성 의원들 “비효율 없애야” #지난 대선 때 모든 후보 공약사항 #개헌 않고 국회법만 고치면 돼 #“국감 때 공무원 복도 장사진 그만”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그러나 지지부진이다. 타당성 조사를 위한 예산도 올해 2억원이 배정됐다. 10월이 되도록 집행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런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재적 의원 299명에게 설문을 돌려 162명이 응답했다. 그 결과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에 찬성하는 의원은 응답의원의 62%인 100명이었다. 반대는 그 절반 정도인 52명(32%), 잘 모르겠다는 10명(6%)이었다.

설문조사에서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국회 세종 분원 설치에 찬성하는 의원이 더 많았다. 차이가 있다면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찬성 비율이 다른 당보다 조금 낮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응답 의원 69명 중 46명(67%)이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에 찬성했다. 반대 의원은 19명(28%)이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무소속 응답 의원 41명 중 찬성은 29명(71%), 반대는 10명(24%)이었다. 자유한국당은 응답 의원 51명 중 24명(47%)이 찬성하고, 23명(45%)이 반대해 찬반이 비슷했다.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를 찬성하는 이유로는 61명(61%·중복 응답)이 ‘지역 균형 발전과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서’를 꼽았다. ‘공무원 업무 효율성 강화’를 지적한 의원도 51명이었다.

국회 분원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분원 설치가 오히려 비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의도 의사당과 세종시 의사당을 동시에 운영해야 하고, 국회의원과 국회 공무원들이 두 곳을 오가야 하므로 그 비용과 시간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또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되지 않았고, ‘통일시대에 대비하는데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드는 의원도 있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회를 아예 세종시로 옮기는 데 찬성한 의원도 응답자의 절반인 81명이나 됐다. 국회 이전에 반대하는 의원은 65명(40%), 잘 모르겠다는 의원은 16명(10%)이었다.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청와대와 국회의 이전은 위헌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위임하는 조항을 포함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처리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예 수도를 옮기려 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2004년 10월 수도의 위치를 ‘관습 헌법’이라고 결정하면서 어그러졌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런데도 강행하려 했다. 헌재가 지정한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정부 부처를 옮기는 선택을 했다. 이 바람에 청와대와 행정부와 국회가 분산돼 달리고 싶어도 가속 페달을 밟을 수가 없는 이런 정부가 된 것이다.

개헌은 어렵다. 현행 헌법에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국회 분원이다. 공무원을 편하게 해주자는 게 아니다. 제대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것이 국민의 복리이기 때문이다. 국회 분원은 국회법만 고치면 옮길 수 있다.

그동안 국회 분원 설치는 두 차례 시도됐다. 박수현 전 의원이 2012년 문재인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대표 등 46명을 공동 발의자로 해 국회 분원 설치를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2016년 5월 20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8명의 의원을 공동 발의자로 해 비슷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해찬 대표는 9월 10일 세종시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대부분의 행정기관이 세종시로 이전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회에 장관들이 출석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행정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국회 분원, 세종의사당을 설치하는 데 힘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심의하지 못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국회의 요청으로 조사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공무원들이 세종시에서 국회로 출장 다니며 쓰는 비용이 연간 35억~67억원 정도다. 여기에는 일비와 식비·교통비 등의 비용만 포함했다. 고위 공무원들이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바람에 생기는 행정 비효율은 계산하지 않았다. 이 조사는 행정부 공무원 42%가 서울 국회와 세종청사를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비효율적’이라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한국행정연구원은 국회 세종 분원을 건설하는데 107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것은 이주 비용 등을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한국행정연구원은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회 분원을 설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국회 분원에 대해서는 여야 각 정당 후보가 모두 지난 대선 때 공약으로 제시했다. 여야 정치권의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기자회견에서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해 국회의원들이 내려와서 상임위원회를 열고, 국정감사를 하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인 지난해 5월 여야 5당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도 “행정 비효율을 막기 위해서 국회 분원을 설치하면 국민이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대선 당시 국회 분원 설치를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13 지방선거 때도 국회 분원 설치를 내걸었다. 그러나 국회는 아직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선거가 끝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분원 설치를 위한 국회법 심의는 물론 설계 예산 배정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의원 비서관, 국회 직원이 전화만 하면 세종시 공무원들이 바로 보고서를 들고 뛰어오는데 길들어 있기 때문이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서구을)은 “지난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이 한결같이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를 공약했지만, 현재 각 당의 사정을 정밀하게 보면 분원에 반대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며 “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원회 간사 등 지도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세종시 분원 설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승민 명지대 교수(행정학)는 “국정감사나 상임위가 열릴 때면 공무원 수백 명이 국회로 출장 와 복도 등에 대기하고 있는 광경은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라며 “수백 명의 공무원이 서울로 이동하는 것보다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해 국회의원 수십 명이 세종시로 가는 게 행정 낭비를 줄이고 질 좋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김진국 칼럼니스트, 정재홍 기자,
김지수·우아정 인턴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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