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면 독감 치료제 비축량 1/3 부족해지는데 뒷짐만 진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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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비축해둔 항바이러스제가 앞으로 1년 뒤면 급격히 줄어들지만 뒷짐만 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1]

정부가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비축해둔 항바이러스제가 앞으로 1년 뒤면 급격히 줄어들지만 뒷짐만 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1]

정부가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비축해둔 항바이러스제(인플루엔자 치료제)가 앞으로 1년 뒤면 급격히 줄어들지만 뒷짐만 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 간사)은 질병관리본부에서 제출받은 항바이러스제 비축량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9일 공개했다.

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비해 우리 국민의 30%가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양의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등)를 비축해 놓고 있다. 하지만 항바이러스제의 유효기간 만료로 내년 6월부터 비축률이 급격히 감소한다. 그 이후 2020년 상반기까지 1년여 동안은 인플루엔자 위기 발생 시 정상적인 항바이러스제 공급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같은 사실을 수년 전부터예측하였지만 다른 사업 예산 확보를 위해 항바이러스제 비축 예산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뤘다.

해외 국가들도 정부 사업으로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한다. 영국은 인구대비 79%, 일본은 47.7%, 미국은 33%를 비축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이후 국가 항바이러스제 비축 사업을 시작했다. 항바이러스제의 비축은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나라마다 보건의료 환경에 따라 비축 목표가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의 필요 비축률은 30%다.

정부는 2009년 1159만명분을 한 번에 사들였고, 그 유효기간(10년)이 곧 도래한다. 내년 6월부터 2020년 1월까지 1090만명분(총 비축분의 65%)이 폐기될 예정이다. 예상 비축률은 34%(2018년 9월 말 현재) → 30%(2019년 7월) → 22%(2019년 12월) → 20%(2020년 1월)로 2020년 상반기에는 필요한 비축량보다 최대 10%포인트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에는 항바이러스제 필요량의 1/3이 부족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연합뉴스]

2020년에는 항바이러스제 필요량의 1/3이 부족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연합뉴스]

최도자 의원은 “상황이 이런데도 정작 질병관리본부는 비축 목표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않다”라며 “질병관리본부가 작성한 기재부 예산설명 자료에 따르면 ‘목표 비축율(30%) 유지를 위해 약 895만명분의 추가구매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예산요청 단계부터 비축량 확보에 소극적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일시구매 시 예산부담’을 이유로 들며 2년에 걸쳐 분할구매를 하겠다며 당장 필요보다 적은 예산을 신청하였다. 비축을 위해 필요한 총예산 785억원 중 내년 부족분의 절반을 비축하기 위해 예산으로 390억원이 필요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예산안에 117억원만 담았다. 정부 안으로 확정돼 국회에 제출된 내년 예산은 250억원으로, 가격 조정을 고려하더라도 비축 부족분의 40%만을 비축할 수 있는 금액이다.

최 의원은 “의원실에서 예산의 요청과 확보가 계획대비 저조한 이유를 질의했지만,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는 ‘이 사업은 신규예산사업으로 기관 예산의 상한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고 비판했다. 기관별로 신규사업 예산의 상한이 있기 때문에, 약을 사서 창고에 쌓아놓는 사업이 다른 신규 사업의 예산을 감액시킬까 봐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처음부터 적은 금액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도자 의원실]

[최도자 의원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로 전 세계에서 7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63명이 사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대유행의 대비 필요성에 대해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100년에 3회 정도의 빈도로 출현하며, 다음 대유행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으나, 반드시 출현하고 피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대비는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만약 2020년 상반기에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온다면 항바이러스제 품귀 현상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 초, 미국에서 인플루엔자가 크게 유행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항바이러스제 품귀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의 당시 비축량은 33%였다.

최 의원은 “질병관리본부의 계획대로라면 2020년에는 항바이러스제 필요량의 1/3이 부족하다”라며 “질병관리본부가 무사안일한 태도로 공중보건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만약 2020년에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찾아올 경우 우리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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