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이장규칼럼

북한이 개방정책을 편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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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찌 몇 마디 말로 첫 경험(북한)의 흥분과 착잡함을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평양의 제한된 한 단면을 보고 전체 북한을 논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궁금했던 몇 가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주관적 관찰이지만 간략하게나마 소개한다.

첫째 질문.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나는 서슴없이 "예"라고 대답하겠다. 변화의 속도가 매우 불만족스럽긴 해도, 어쨌든 북한은 조심조심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쪽 시각으로 보면 "그것도 변화라고 할 수 있느냐"며 면박거리가 될지언정 그들 기준으로 보면 엄연한 변화라고 주장할 만한 일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둘째 질문. 경제가 호전되고 있는가? 다른 데는 모르겠고 평양 기준으로 보면 "상대적 호전"이라고 답하겠다. 여전히 어렵지만, 1990년 중반의 기근 상황(그들은 고난의 행군 기간이라고 불렀다)에 비해서는 많이 호전됐다는 말이다. 평양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그렇다고 했다. 거리엔 여전히 차가 없었다. 그래도 전기 사정이 호전됐고, 식량난도 많이 해소됐단다.

셋째 질문. 개방할 생각이 있긴 있는 건가? 생각도 있고 말뿐만 아니라 실천도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인천에 해당하는 남포의 항만 확장사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좋은 항구와 수리조선소를 만드는 데 외자가 필요하니 남쪽 기업이 꼭 투자하도록 기사 좀 잘 써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그러나 말끝마다 위대한 수령님, 경애하는 장군님을 찾을 때는 맥이 탁 풀렸다.

넷째 질문. 외자유치를 정말 원하는가? 답은 조건부 '예스'다. "무역과 자립적 민족경제는 대치되는 게 아니라 보완적인 것"이라며 정부 당국자는 투자설명회를 통해 외자 환영을 역설했다. 그러나 일방적 연설만 하고 질문을 사절하는 투자설명회는 처음 봤다. 아직도 외자유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섯째 질문.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 비해 생활 수준이 어떻던가? 자존심은 제일 강한 반면 생활 수준은 꼴찌 수준으로 느껴졌다. 개방의 정도가 꼴찌라는 이야기하고 통한다. 휴대전화가 없고 신용카드를 전혀 안 쓰는 나라다.

여섯째 질문. 중국식 개방을 본뜨는 건가? 북한 사람들의 대답은 "천만의 말씀. 우리는 우리식 개방을 추구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주체사상을 훼손하는 개방은 절대불가라면서 선을 긋는다. 체면 탓으로 그런 것 같은데, 실제 속마음은 좀 다른 것 같이 느꼈다.

일곱째 질문. 북한의 개방 과정에서 가장 득 보는 나라는?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북한 땅에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최대의 수혜자는 단연 중국일 것이다. 수입제품 대부분이 중국제로서 이미 그런 조짐이 완연하다. 이번에 가본 국제상품전람회장에도 중국 물건이 판을 치고 있었다. 냉장고.세탁기.텔레비전 등등…. 지금 당장의 시장규모야 보잘것없다 해도, 앞으로를 생각하면 중국의 북한경제 석권은 이미 결판이 나 보였다. 자랑하는 현대식 유리공장도 중국이 공짜로 지어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에 대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가슴만 답답했다.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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