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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하면 여당이 뭉개니 … 김동연 “가슴에 숯검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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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김동연. [뉴스1]

김동연. [뉴스1]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위상을 둘러싸고 ‘무늬만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평가가 관가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당·청이 끄는데 #고용쇼크 뒷감당은 부총리 몫 #‘최저임금 차등화’ 카드 내놨지만 #여당 “논의 필요 … 쉽지않을 것” #“경제 컨트롤타워 인정받으려면 #정책 적극 수정, 구체적 성과 내야”

고용·투자 등 각종 경제 지표가 고꾸라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김 부총리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이 경제정책을 주도하며 김 부총리의 실질적 권한은 크지 않다. 그래서 김 부총리의 발언에 ‘영(令)’이 서지 않는다. 김 부총리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꺼내 든 ‘최저임금 차등화 적용’ 카드도 여권이 뭉개는 모양새다.

김 부총리는 지난 2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서다. 그는 “최근 고용 상황에 대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부총리는 “가슴에 숯검댕(숯검정)을 안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잠시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고용 부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강조했다.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김 부총리가 ‘고용 쇼크’에 대해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는 건 언뜻 당연하다. 문제는 고용 악화의 주원인을 제공한 청와대와 여권 인사가 실질적으로 정책을 주도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책임을 지겠다는 김 부총리에게는 힘이 실리지 않는 모양새다.

실제 김 부총리는 대정부질문에서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화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여러 차례 최저임금 ‘속도 조절’ 필요성을 밝힌 데 이어 한 발 더 나갔다. 하지만 여당 실세는 경제 컨트롤타워와 배치되는 입장을 내놨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YTN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화는 정부와 좀 더 논의하겠지만, 개인적 판단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대정부질문에 함께 배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도 “현재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는 것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깊게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인세·소득세율 인상 과정 때와 마찬가지로 김 부총리의 의견이 뒷전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의 문제가 고용 쇼크의 주원인이라는 점을 경제 전문가인 김 부총리는 잘 알고 있고, 이에 대한 문제를 나름대로 제기한 것”이라며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김 부총리의 주장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의 현실적인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지난달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의 수행원 명단에서 김 부총리는 빠졌다. 청와대는 “부동산 문제에 대처하거나 추석 민심을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기재부 관계자는 “부처 장관과 대기업 총수가 대거 포함된 수행원에 남북 경협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부총리가 빠진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한국재정정보원의 행정 자료가 유출되면서 관리 책임이 도마 위에 오르는 등 기재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위상 추락에 김 부총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김 부총리에 대해 “잘못된 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정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제 컨트롤타워는 결국 사과가 아니라 결과물로 평가받아야 한다”라며 “잘못된 정책에 대한 궤도 수정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특히 혁신성장 부분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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