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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 강간" 무고한 여성 실형…'성범죄 무고' 처벌 강화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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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무고죄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성범죄 무고사범에 대해서는 성범죄 형량에 비례하는 형을 선고하도록 법을 개정해달라는 등의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오는 6일과 27일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와 남성단체 ‘당당위’가 각각 혜화역에서 집회를 예고한 가운데, 성범죄 관련 무고 처벌 강화 관련 여론이 더욱 확산할 조짐이다.

남녀간 성범죄 관련 무고 끊이지 않아

A씨는 지난해 초 남자친구와 교제를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종종 재력을 자랑하며 A씨에게 고가의 차량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A씨는 남자친구의 말을 믿었고, 급전이 필요하다는 말에 100만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돈을 빌려 간 남자친구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채무 상환을 미뤘다. 한달이 지나도록 선물해주겠다는 차량도 받지 못했다. 이에 A씨는 앙심을 품고 남자친구로부터 모텔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A씨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당일 두 사람은 성관계를 맺은 적도 없었으며, A씨가 재력을 속인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고자 누명을 씌운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지난달 28일 A씨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자신을 강제추행으로 고소한 여성을 상대로 앙갚음하고자 보복성 무고를 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B씨는 지난해 7월 "주점 여주인이 내 성기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했다"며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경찰에 출석해서도 B씨는 같은 주장을 하며 여주인에 대한 처벌을 호소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B씨는 과거 여주인을 대상으로 강제추행을 저질렀으며, 이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자 이에 대한 보복을 위해 여주인을 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여성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성범죄를 저지르는 등 여죄도 확인됐다. 이에 제주지방법원은 지난달 7일 B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형량은 선진국보다 강해…현실에선 집유·벌금 

이처럼 상대방을 처벌받게 하기 위해 성범죄를 당했다고 허위로 신고할 경우 죄질이 나쁘면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기 마련이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현행법상 무고죄는 형법 156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는 선진국과 비교해 형량이 강한 편이다. 독일은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 프랑스는 5년 이하의 구금형 및 4만5000유로(약5800만원)의 벌금, 영국은 6개월 이하의 즉결심판이나 벌금, 미국은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연방형법 기준)에 .

실제로는 피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법정에서 대다수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고 마무리되는 실정이다. 지난 9월 내연관계에 있던 직장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50대 여성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올해 2월에는 여고생을 성추행했다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검찰 공무원이 보복으로 여고생을 무고했다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무고죄 자체가 입증이 어렵다는 점도 한계다. 설사 성범죄 피의자가 수사단계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거나,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더라도 '상대방을 형사처벌 받게 하기 위해 고의로 무고를 했다'는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 무고죄 적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다 많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무고 혐의 입건자 1만219명이 가운데 기소된 건수는 전체의 18%인 1848건이고, 그중 구속은 5%인 94명에 불과했다.

"성범죄 무고죄는 집행유예 금지해달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지난달 26일 "무고죄로 기소된 사람이 집행유예를 받는 것은 상대방이 치러야 할 대가에 비하면 너무 가볍다"며 "성폭력 무고범들도 이에(성범죄에) 상응하는 처벌로 다뤄주실 것을 청원한다"는 요청이 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성범죄 무고죄 관련 청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성범죄 무고죄 관련 청원 캡처.

지난달 13일 한 청원자는 "성범죄 무혐의 남성에 대한 국가배상제를 도입해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같은 성범죄 무고죄 관련 청원은 지난 한달 동안에만 30건 넘게 올라왔다. 하루 한 건 꼴로 성범죄 무고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호소가 접수된 것이다.

"형평성 우려, 구형·양형 강화가 현실적"

실제로 무고 사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무고죄 발생건수는 ▶2013년 3012건▶2014년 3126건▶2015년 3311건▶2016년 3617건▶2017년 3691건으로 5년 사이 22.2% 가량 증가했다. 성범죄 관련 무고죄 수치가 별도로 집계되지는 않지만, 통상적으로 전체 무고죄 가운데 약 30~40%가 성범죄 관련 무고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국회 법률안 개정을 통한다면 현실적으로 무고죄 처벌 강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법의 형평성 등을 고려할 때 많은 논란이 뒤따를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평 전 한국교육법학회 회장은 "국회에서 최저 형량을 3년 이상으로 개정해 집행유예를 선고 못 하게 하는 방법 등으로 법개정을 통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은 사회적 보루이자 최소한의 기준이어야 하는데, 특정 사건으로 여론이 불거질 때마다 법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성범죄 무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무고죄 적용 요건을 폭넓게 해석하는 방법으로도 접근할 수 있지만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다"며 "범죄에 대한 예방효과 등을 이유로 성범죄 무고죄 관련 처벌이나 요건을 강화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7월 청와대도 무고죄 특별법 제정 관련 청원에 대해 "무고죄 특별법 제정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고, 무고한 사람이 가해자로 몰려 재판받거나 처벌받지 않도록 더 면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무고로 인한 피해가 크고 반성의 기미가 없는 경우에는 초범이라 하더라도 실형을 구형하는 등 중하게 처벌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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