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공업용 구별 없이 쓰는 방청제|아파트·빌딩 수돗물 "건강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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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아파트단지와 빌딩 등 집합건물 상수도 물탱크의 파이프가 녹스는 것을 막기 위해 쓰는 방청제의 제조와 사용에 대한 법적인 사후관리제도가 시급하다. 국내에서 현재 보사부로부터 방청제의 제조판매를 허가 받은 곳은 6개 업체. 그러나 이에 대한 법령은 제품의 규격기준에만 두고 있고 제조과정과 사용에 대한감독과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민보건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방청제는 수도관의 부식과 녹물을 방지하는데 쓰이는 약제로 국내에서는 거의 모든 아파트단지와 고층빌딩의 급수라인에 사용되고 있어 우리가 매일 먹는 수돗물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 방청제의 주원료는 인산염과 규산염으로, 시판되고 있는 제품은 kg당 4천원 내외이며 국내시장 규모는 연40억원 정도.
방청제의 주원료에는 식품첨가용과 공업용이 있는데 규정에 식품첨 가용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어 문제가 따른다. 따라서 몇 개 업체에서는 공업용도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의 정용교수는『공업용은 중크롬산칼륨 등 인체에 해로운 불순물이 많이 들어있다』고 경고한다.
김면섭 한양대 공대교수는 『제품을 만들 때 산화알루미늄이나 황산알루미늄·탄산마그네슘 등을 첨가제로 사용하는 수가 많다』고 말한다. 그런 경우 보사부가 규제하고 있는 비소·카드뮴·수은·납 등 4가지 중금속 이외에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나오더라도 규제할 근거가 없는 상태. 일본의 경우 공업용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방청제의 용해도도 큰 문제·보사부의 급수용 방청제 사용에 대한 지도감독지침 제4조는「음용수에 첨가하는 방청제의 농도는 ℓ당 10㎎을 넘지 않도록」하고 세계보건기구(WHO)는 5PPN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인산염이 과다하게 용해돼 인체에 흡수됨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 인산염은 칼슘과 아주 잘 결합하므로 과다 섭취하면 체내에서 칼슘의 신진대사를 방해하며 임산부나 영아에게는 치명적인 해를 입히기도 한다.
실제로 하루 6.6g이상의 인산염을 섭취했을 때 콩팥에 석회가 침착 됐다는 외국의 동물실험결과도 있다. 또 과다하게 용해된 인산염은 배관파이프의 중금속인 납을 용출시킨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제품은 대개 수온 섭씨 5도, 수압 3∼5kg/평방cm, 농도 5PPM에서 정상적인 효력을 12개월 동안 나타낼 수 있다. 공업진흥청 공해시험과 김동화연구관은『우리 나라는 4계절이 뚜렷해서 기온이 변할 때마다 각각 그에 맞는 제품을 사용해야 하나 현재 그렇지 못하다』고 경고한다.
아파트 물탱크 수온의 경우 여름이 약 25도, 겨울은 5 도정도, 봄과 가을은 비슷하다고 보면 계절에 따라 용해도가 다른 세 가지 타입의 제품이 나와야 과다한 인산염의 용출을 막을 수 있으나 현재는 한가지 타입밖에 없다. 또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제품마다 용해도도 다르고 외국제품에 비해 품질도 많이 떨어진다는 것.
한편 제조업체가운데 하나인 동해식품화학(주)의 이성호 상무는 『약품처리설비는 아파트단지마다 다르다. 또 20층 이상의 고층건물에서는 고층과 저층의 수압이 서로 다르므로 용해도가 각각 달라 방청제를 만드는데 고충이 많다』고 설명한다. 수압은 1층당 0.3kg/평방cm로 계산되는데 25층의 경우 7.5kg/평방cm로 짧은 시간 내에 방청제가 모두 용해돼 인산염이 과다하게 용출된다는 것. 또 방청제의 처리설비가 온수급수라인에 설치됐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인산염은 방청효과가 아주 빨라 부식이 시작된 파이프라인의 경우 대개 3∼4주, 농도를 강하게 하면 3∼4일만에 녹물이 멎기도 한다.
그러나 사전교육이 안된 아파트나 고층 빌딩과 관리인들이 방청제를 마구 투여해도 이를 감독해줄 기관이 없다.
현재 방청제를 투입하는 전문가나 뚜렷한 감독지침도 없이 안심하고있는 사이 인체에 해로운 수도물을 마실 위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일반인이 쓰는 보통정수기로는 이 같은 방청제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관계부처는 일부 방청제의 성분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심각성을 일단 인식하고 현재정밀분석을 하는 한편 대책을 마련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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