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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美정부와 합의 번복 대가…이틀새 벌금 111억→444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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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AP=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AP=연합뉴스]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창사 15년 만에 맞은 최대 위기에서 벗어났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CEO직 강제 사임은 일단 피하게 됐다. 하지만 테슬라 이사회 의장에서는 사임하게 됐으며, 앞으로 3년간 의장직을 맡지 못한다.

머스크 '상장폐지' 트윗 사태 일단락 #SEC·테슬라, 29일 'CEO 유지, 의장 사퇴' 합의 #27일 1차 합의 머스크가 번복, 벌금 4배로 늘어 #이사 2명 신규 선임, '막말' '허위 공표' 모니터링 #SEC, 생산능력 허위 과장 여부 조사는 계속

또 2000만 달러(약 222억원)의 벌금도 물어야 한다. 머스크와 별도로 테슬라도 2000만 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테슬라는 29일(현지시간) 이같이 합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ㆍ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했다. 합의가 이뤄진 만큼 SEC는 머스크 CEO의 사기 혐의 고소를 취하할 예정이다.

SEC는 이틀 전인 27일 뉴욕 남부 연방 지방법원에 머스크 CEO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유죄가 인정되면 머스크는 테슬라 CEO를 사임해야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미국 내 모든 상장 기업 CEO나 이사직을 맡을 수 없게 된다. SEC의 사기 혐의 고소는 그만큼 중범죄로 인식되고 있다.

머스크 CEO와 테슬라로서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하지만 이사회 의장 사임으로 테슬라 경영 구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난 두 달 동안 머스크와 테슬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테슬라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네 가지 쟁점을 짚어본다.

①SEC는 왜 머스크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나

SEC는 27일 뉴욕 남부 연방 지방법원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머스크가 거짓된 언급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규제 당국에 적절한 고지를 하지 않아 투자자에게 피해를 줬다”고 밝혔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상장 기업 경영자의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거짓된 언급’은 지난 8월 7일 머스크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말한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겠다. 자금은 확보됐다”는 트윗을 올렸다.

테슬라 상장 폐지 계획을 전한 일론 머스크 CEO의 8월 7일 트윗.

테슬라 상장 폐지 계획을 전한 일론 머스크 CEO의 8월 7일 트윗.

이후 이어진 트윗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를 통해 자금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또 상장폐지와 관련한 주식 전환 제안 가격은 주당 420달러(약 46만원)라고 언급했다. 머스크의 트윗으로 테슬라 주가는 요동쳤다.

하지만 머스크는 3주 만에 주식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 폐지 계획을 백지화했다. 테슬라 이사회는 머스크의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주주들 반대가 계속되자 계획을 철회했다.

SEC가 테슬라에 소환장을 보내 머스크의 상장폐지 발언 관련 의혹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고, 이와 별도로 미 법무부도 위법 여부 내사에 들어갔다.

②머스크는 상장폐지 자금을 마련했나

SEC는 머스크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주당 420달러를 언급하며 상장폐지 계획을 언급한 점이 시장을 교란하고 투자자를 속였다고 판단했다. 머스크 CEO가 상장폐지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거나 마련할 구체적 계획이 있었는지가 쟁점이다.

머스크 CEO 쪽 얘기는 조금 다르다. 월스트리스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머스크가 사우디아라비아 측과 구두계약을 맺은 것으로 믿고 그런 트윗을 썼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머스크는 상장 폐지 계획의 자금 조달에 사우디 국부펀드가 참여하는 것으로 구두계약을 맺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SEC는 문서로 된 계약과 고정된 가격이 있어야 사우디 국부펀드 측과의 자금 조달에 관한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정 다툼이 진행된다면 머스크는 “중동에서는 구두 계약이 일상적으로 운영된다”고 주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SEC가 사기 혐의 고소를 발표한 직후 머스크 CEO는 성명을 통해 “SEC의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은 나를 매우 슬프고 실망스럽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후 사우디 국부펀드 측 입장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최근 테슬라의 경쟁사인 루시드모터스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테슬라에 투자할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테슬라 지분 5% 미만을 보유한 주주이기도 하다.

③타협안 번복했다가 이틀 만에 다시 합의…벌금 4배로

SEC와 테슬라가 타협안에 전격 합의해 발표한 것은 29일이지만, 사실 이틀 전에 합의가 한 차례 이뤄졌다가 깨졌다. SEC가 머스크를 고소한 지난 27일 일이다.

SEC와 테슬라 변호사들은 며칠간 협상 끝에 사태 해결을 위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뉴욕타임스는 “27일 오전 협상안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합의 내용은 지금의 합의안보다 머스크 CEO에게 더 유리했다.

NYT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머스크 CEO가 테슬라 이사회 의장에서 2년간 물러나며, 1000만 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돼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합의안을 테슬라 변호사들이 머스크 CEO에게 보고하자, 머스크가 단번에 거절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합의안에는 이번 사안에 대해 앞으로 공개적으로 인정도, 부인도 할 수 없다는 조항(admit nor deny)이 들어있었다. 머스크가 앞으로는 트위터를 통해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사기 혐의에 대한 유·무죄를 더는 다투지 않는 게 합의의 골자다.

익명의 소식통은 NYT에 “앞으로 이 사안에 대해 잘못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게 되는 점을 머스크가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전했다.

합의가 성사될 것으로 기대했던 SEC는 협상이 불발되자 부랴부랴 사기 혐의 고소장을 작성해 당일 오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를 한 차례 깼다가 다시 하는 바람에 테슬라와 머스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 머스크 CEO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있어야 하는 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벌금액은 1000만 달러에서 4000만 달러로 뛰었다. 머스크 CEO 개인이 2000만 달러, 테슬라가 2000만 달러 내야 한다. 테슬라는 사기 혐의 피소 사건 당사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새로운 합의안에서는 테슬라도 함께 처벌받게 됐다.

④머스크가 합의한 이유, 그리고 테슬라의 앞날은

머스크 CEO가 이틀 만에 ‘합의 거절’을 번복한 것은 테슬라 변호인단과 투자자의 압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NYT에 따르면 테슬라 변호사들은 합의가 불발된 다음 날인 28일 SEC 측과 협상을 재개했다. 이날 머스크 CEO의 사기 혐의 피소 사실이 알려지면서 테슬라 주가가 하루에 14% 가까이 폭락했다.

머스크 CEO는 SEC와 합의를 하면 테슬라와 스페이스X 등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회사들이 사모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영향을 받을지를 염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SEC는 테슬라나 스페이스X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영향을 받지 않도록 '면제'를 허용했다.

머스크 CEO는 SEC와 법정 다툼까지 가 본 기업인들의 자문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큐반을 비롯해 SEC와 법정 다툼 경험이 있는 기업가들은 머스크 CEO에게 설사 이기더라도 SEC와의 소송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 알려줬다고 한다.

일단 합의 도출로 최근 두 달 동안 테슬라의 발목을 잡은 큰 고민을 덜게 됐다. 그동안 머스크의 CEO 퇴임 가능성에 시장은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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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테슬라의 창업자, CEO, 이사회 의장, 최대주주이다. 그뿐만 아니라 테슬라의 최고 기술자, 최고 영업사원, 최고 마케팅 담당이기도 하다고 WSJ은 전했다. 투자자와 소비자는 머스크를 보고 자금을 대고, 자동차를 샀다. 이 때문에 머스크가 없는 테슬라는 테슬라가 아니라는 인식까지 있었다.

게다가 ‘악동’ CEO의 기행과 막말도 어느 정도는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SEC와의 합의안에 따르면 테슬라는 2명의 독립적 지위를 갖는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이들은 머스크 CEO가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모니터링하게 된다. 또 잠재적인 이익 충돌, 기업 발표 등을 상시 모니터링할 상설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제이 클레이턴 SEC 위원장은 “테슬라와의 합의는 기업과 고위 임원들이 중요 사항을 발표할 때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며, 해당 내용이 허위이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말했다. SEC는 또 “이번 합의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테슬라의 기업 지배구조를 강화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SEC가 테슬라에 대한 다른 조사까지 중단한 것은 아니다. 테슬라가 번번이 달성하지 못하는 자동차 생산 대수 발표가 허위인지 아닌지는 아직 조사 대상이다. 머스크가 물러나는 테슬라 이사회 의장 선임도 회사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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