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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의 앵그리2030]⑫내 집 마련 30년 걸리는 나라 정상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15년? 글쎄 가능할까? 자신이 없다.”
집 얘기에 직장인 유지환(34) 씨는 한숨부터 쉽니다. 20~30대가 주택을 마련하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 따지는 건 집값 상승기에 자주 등장하는 분석입니다. 최근엔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15년 이상 소요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올해 2분기 39세 이하 가구주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361만5400원이었고, 올해 6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중위가격)은 6억6403만원이었습니다. 고스란히 모은다는 가정하에 183.7개월, 즉 15.3년이 걸린다는 분석입니다.

서울 송파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 [뉴스1]

서울 송파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 [뉴스1]

정말 15년이면 될까요? 산술적으론 맞지만 사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일단 처분가능소득을 쪼개서 봐야 합니다. 처분가능소득은 한 가구의 전체 소득에서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등 고정비용(비소비지출)을 빼고 남은 돈입니다. 아직 제대로 쓰기 전이란 얘기죠.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가고, 아이들 학원비도 내고, 가끔은 옷도 사입어야 합니다. 이런 소비지출을 제외하고 남은 돈이 가계 흑자액입니다. 순수하게 저축이 가능한 돈이라 볼 수 있습니다.

통계청이 가계 소득과 지출 조사를 분리하면서 2017년 이후의 가계 흑자액은 파악이 어렵습니다. 가장 마지막 지표인 2016년 4분기 기준으로 한번 볼까요? 벌이가 중간쯤인 3분위(소득 상위 40~60%) 가구의 가계 흑자액은 84만원입니다. 과연 이 돈을 얼마나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까요?

지난 1월 분석([장원석의 앵그리2030]②직장인 집 사려면 25년)에 따르면 전국 평균 주택가격(2억7899만원, 2017년 12월)을 기준으로 332개월(27.7년)이 걸립니다. 물론 집에다 현금으로 쌓아두진 않겠죠. 이 돈을 연 2.5% 적금(단리, 세전)에 가입해 모은다고 계산해볼까요? 약 262개월(21.8년)이 걸립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해가 갈수록 소득도 늘겠죠. 해마다 가계 흑자액이 5만원씩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어떨까요? 그래도 194개월(16.2년)이 걸립니다.

20~30대의 50% 이상은 서울과 수도권에 살죠. 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면 서울은 정확히 25년, 수도권은 19.8년이 걸립니다. 30살 가장이 서울에 집을 사려면 55세는 돼야 한다는 뜻이죠. 이 역시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가계 흑자액을 다 모은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가정이니까요. 그러려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 안 되고, 해외여행은 당연히 안 되고, 심지어 누가 아파서도 안 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25년(서울 기준)은 집값 상승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계산입니다. 과연 25년 동안 집값은 안 오르고 우리를 기다려줄까요? 25년은커녕 1년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난해 8월 4억8423만원이던 서울 주택 평균 매매가격은 올해 8월 5억7833만원으로 19.4% 상승했습니다. 최근 5년 동안은 28.8%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가계의 소득 증가율은 9.1%에 그쳤습니다.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3배 빨랐던 셈이지요. 유씨는 “증여나 로또 당첨 같은 이례적인 이벤트가 없다면 30년 이상 걸린다고 봐야 한다”며 “집 한 채 가지는 데 30년을 올인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인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라 경제가 성장하면 가계 소득 또한 늘어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최근엔 어떤 이유에선지 가계의 소득 정체가 뚜렷합니다. 특히 청년층의 소득 정체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올해 2분기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53만51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늘었습니다. 그러나 청년 가구(가구주가 39세 이하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49만 1637원으로 0.5%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40대(3.8%), 50대(7.3%)와 격차가 매우 컸습니다. 실제 쓸 수 있는 돈(처분가능소득)만 따지면 전년 대비 도리어 1.1% 줄었습니다. 전 연령층서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했죠.

노동시장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20~30대는 상대적으로 소득 절대액이 적습니다. 소득 증가율이 전체 가구보다 조금 더 높게 나타나는 게 일반적입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진 이런 공식이 통했습니다. 금융위기 직전 5년(2004년~2008년) 동안 전체 가구의 소득은 5.2%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청년 가구는 6.8% 늘었죠. 그러나 최근 5년(2014년~2018년)은 확 다릅니다. 청년 가구의 소득 증가율은 1.9%로 전체 가구 소득 증가율(2.3%)에 못 미쳤습니다.

자식이 힘들다는데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보태주고 싶은 게 우리 부모의 마음이죠. 부모가 여력이 있으면 모르련만 자식을 돕겠다고 본인의 노후 자금까지 손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청년층의 소득 부진이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이유죠.

소득 정체의 출발점은 고용 불안입니다. 청년들이 제때, 괜찮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상은 2009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소득 부진이 뚜렷해진 시기와 일치하죠. 일단 취업이 늦습니다. 15~29세 인구 중 취업자의 비중은 2000년 41.9%에서 올해 8월 42.7%로 큰 변화가 없습니다. 다른 연령대가 꾸준히 상승 흐름을 나타내는 것과 확연히 다르죠. 전체 취업자 중 29세 이하 취업자의 비중도 1990년대 중반엔 35%를 상회했지만, 지금은 1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높은 대학진학률의 부작용입니다. 그래도 2000년대 중반까지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비교적 빨리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취업 재수가 흔해졌습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같은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게 원인입니다. 자연히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고용 불안의 장기화로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는 청년이 많아졌습니다.

돈 벌 나이가 됐는데 벌이가 시원찮으니 자연히 빚이 늘어납니다. 2012년~2017년 사이 가구주가 20대와 30대인 청년 가구의 부채는 각각 85.9%, 56.0% 증가했습니다. 전체 가구 증가율(28.8%)을 월등히 앞섭니다. 같은 기간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각각 12.8%, 16.5%에 그쳤습니다. 이는 전체 가구 증가율(18.5%)에 못 미칩니다.

대기업과 공기업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는데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립니다. 청년이 중소기업을 꺼리는 게 꼭 월급 때문만은 아닙니다. 교통과 정주 환경, 성장 가능성 등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해 있습니다. 취업준비생 서동훈(28) 씨는 “눈높이를 낮추란 얘기가 가장 무책임한 것”이라며 “눈높이를 낮추면 생활 수준도 낮아진다는 걸, 그리고 역전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은 출발점에 서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득이 늘고, 벌어서 집 사는 게 가능해지려면 일단 질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합니다. 정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법은 의문입니다. 일자리 예산은 2012년 10조원에서 2019년 23조원으로 많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일자리 예산이 늘면 일자리가 늘어날까요? 그 일자리는 청년이 가고 싶을 만큼 질 좋은 일자리일까요?

강남 일대의 아파트 단지 모습.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강남 일대의 아파트 단지 모습.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일자리 예산은 크게 6개 부문으로 나뉩니다. 이중 고용장려금은 2019년 5조9000억원으로 2016년 대비 2배, 2007년 대비 16.4배로 늘었습니다. 청년이 중소기업에 가면 목돈 마련(최대 3000만원)을 도와주고, 청년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에 고용장려금을 주는 게 대표적이죠. 그런데 궁금합니다. 3000만원을 준다고 대기업에 갈 사람이 중소기업에 갈까요? 고용장려금을 준다고 사업주가 필요도 없는 청년을 채용할까요? 가도록 할 방법이 아니라 일단 가면 혜택 준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걸 미봉책이라고 합니다.

“경기 부진의 영향을 일자리 예산으로 만회하고, 그렇게 하면 일자리를 대량 창출할 수 있다는 인식을 조장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고용보조금은 어차피 고용했을 사람을 고용하면서 보조금을 받는 것이라 채용 증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말 중요한 것은 취업 취약계층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노동시장의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고언입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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