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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미안합니다" 팬들에게 진심 전하고 떠난 봉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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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 LG 투수 봉중근. [연합뉴스]

28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 LG 투수 봉중근. [연합뉴스]

"팬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투수 봉중근(38)이 정든 마운드를 떠나면서도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토록 원했던 우승반지를 껴보지 못한 아쉬움도 감추지 않았다.

봉중근은 지난 19일 구단을 통해 은퇴 의사를 밝혔다. 봉중근은 1997년 신일고 시절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했다. 신시내티 레즈를 거쳐 2002년 빅리그에 데뷔해 거둔 성적은 7승 4패, 평균자책점 5.17. 2007년 1차 지명을 통해 LG에 입단한 봉중근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어깨 관절 와순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 속도가 더뎠고, 결국 올시즌 중 은퇴를 발표했다.

2013년 마무리로 활약하던 시절의 봉중근. [연합뉴스]

2013년 마무리로 활약하던 시절의 봉중근. [연합뉴스]

봉중근은 신시내티 시절인 2004년 어깨 수술을 받았고, 2011년엔 팔꿈치 뼛조각 제거 및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2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기자회견에 나선 봉중근은 "두 번이나 수술을 이겨냈기 때문에 재기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이런 나이에 재기를 한다면 후배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을거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힘들었다"고 밝혔다.

당초 올해 안에 그라운드로 돌아오려고 했던 봉중근은 "7월쯤 라이브 피칭을 했다. '이 정도면 되겠구나'란 자신감을 얻었는데 통증이 재발했다"며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평생 야구를 했다. 조금 더 버티는 것보다는 팀 엔트리 하나라도 비워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은퇴를 결심한 뒤 선배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후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2년 동안 아무 것도 도움이 못되서 가슴 아프고 미안하겠지만 할 만큼 했으니 미련 갖지 말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LG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2012년부터는 구원투수로 변신해 3년 연속 25세이브 이상을 달성했다. 2013년에는 LG의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38세이브)을 세우며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KBO리그 통산 기록은 55승 46패 2홀드 109세이브. 평균자책점은 3.41이다. 암흑기 LG 마운드를 묵묵하게 지킨 그는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봉중근은 "은퇴를 결정하고 난 뒤 만난 팬들의 첫 마디가 '고생하셨습니다'였다. 너무나 죄송스러웠다"고 했다.

2009 WBC 당시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함께 선크림을 바르던 류현진(왼쪽)과 봉중근.

2009 WBC 당시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함께 선크림을 바르던 류현진(왼쪽)과 봉중근.

절친한 후배 류현진(31·LA 다저스)와도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봉중근은 "현진이가 '더 던져'라고 하더라. 은퇴한다고 하니 믿지를 않더라. 사실 그 전에도 어깨 수술이나 재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현진이가 '나도 던지면서 아팠지만 참고 던졌더니 믿음이 생기고 잘 되더라. 형도 그렇게 해'라고 하길래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다'고 답했더니 슬퍼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진이가 '한 타자라도 상대하고 은퇴하는 게 어떠냐는 말에 울컥했다. 진심이 느껴져 고마웠다"고 했다.

봉중근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13년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꼽았다. 전날까지 3위였던 LG는 두산과 최종전에서 승리해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2002년부터 이어진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악몽도 끝났다. 봉중근은 "2007년 입단할 때가 생각난다. 경기로는 2013년 최종전이 생각난다. 두산을 이긴 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줄 알았다. 다들 정말 많이 울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LG 유니폼을 입고 가장 자랑스럽고 기억에 남는 날"이라고 말했다.

봉중근의 소원은 LG에서 우승한 뒤 은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봉중근은 "이병규 코치님 은퇴 장면을 (수술을 받기 위해 간)미국에서 봤다. (우승을 하지 못하고 은퇴해)참 아쉬웠는데 나도 이런 날이 빨리 올줄 몰랐다"고 웃었다. 그는 "정말 아쉽다. 우승을 못하고 은퇴를 하는 게 제일 마음에 걸리고 팬들에게 죄송그럽다. 내가 야구를 하진 않지만 LG가 우승하는 건 조만간 보고 싶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고맙게도 구단에서 배려를 해주셔서 은퇴식을 가지게 됐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해야하는지 걱정이 돼 선수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도 크다. 봉중근은 "김용수 선배님부터 이병규 선배님까지 LG엔 많은 레전드 선배가 있다. '자랑스럽고 존경했던 선배들과 나란히 설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 팬들이 이상훈, 이병규 선배님의 이름과 함께 나를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내 팔꿈치와 어깨를 LG를 위해 많이 썼다고 생각하는데 팬들이 알아주셔서 한이 없다"고 미소를 지었다.

2009 WBC에서 이치로를 범타로 처리하는 봉중근.

2009 WBC에서 이치로를 범타로 처리하는 봉중근.

봉중근은 별명이 많기로도 유명한 선수였다. 선발 투수 시절엔 잘 던져도 유독 승리를 따내지 못해 '봉크라이(승리를 따내지 못해 운다는 뜻)'라고 불렸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일본을 상대로 호투를 펼치고, 간판타자 스즈키 이치로를 견제동작으로 묶어 '봉중근 의사'란 타이틀도 얻었다. 삼성 외국인투수 브라이언 매존이 한국에 오면서 '봉중근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런 미미한 투수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답해 '봉미미'란 장난스러운 별명도 있다.

봉중근은 "봉크라이란 별명도 좋았다. 좋은 별명이든 나쁜 별명이든 생긴다는 것이 관심을 받는 거라 자부심이 있다. 봉미미란 별명도 좋았다"고 웃었다. 그는 "사실 야구는 결과인데 승리를 따내지 못했음에도 팬들이 이해를 해주고, 저를 믿어줘 고마웠다"고 했다. 이어 "제일 맘에 드는 별명은 '봉의사'다. 야구를 하면서 얻은 뿌듯한 별명이다. 한국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지어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대대로 이어질 수 있는 자랑거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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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은 28일 잠실 KIA전에서 은퇴식을 가진 뒤 남은 정규시즌 동안 1군과 동행할 예정이다. 후배 투수들에게 조언을 하고, 힘을 불어넣고 싶어서다. 하지만 코치나 해설위원 등 구체적인 은퇴 이후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봉중근은 "평생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LG는 워낙 사랑하는 팀이고 이상훈 코치님을 보면서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멀리 떠나지 않으니까 팬들과 함께 LG를 응원하겠다. 구체적인 계획은 시즌이 끝난 뒤 구단과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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