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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이재갑, 산업현장 옥죄던 근로감독 관행 손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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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이재갑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이 27일 취임했다. 이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의 평가는 냉엄하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의 고용노동정책에 대해 에둘러 비판과 함께 수정을 예고한 셈이다.

일자리 질보다 양 늘리기 우선 #임금인상 다그치기 줄어들 듯 #노조원 점거 농성도 불법 규정 #노동계 우선 기존 정책 변화 조짐

이 장관은 “일자리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 들어 고용부의 고용정책 실종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경고다. 특히 그는 선(先) ‘일자리 양’, 후(後) ‘일자리 질’ 원칙을 피력했다, 지난 시기 일자리가 줄어드는데도 질을 높이겠다며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 인상을 독려하고, 근로감독으로 산업현장을 옥죄던 관행에 변화가 예상된다. 일자리의 질에 대해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정책 대안 마련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같은 기존 정책을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고용부 관계자는 “돈을 버는 노동자가 많아져야 고용의 질에 대한 정부 정책이나 개선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불필요한 업무는 과감하게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길거리에 차리던 현장 노동청과 같은 이벤트식 노동행정이나 처벌 위주의 근로감독 등에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업무에 공무원을 동원하는 대신 자율성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뜻이어서다.

이재갑 장관이 27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갑 장관이 27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 우선주의로 비치던 그동안의 노동행정도 달라질 전망이다.

이 장관이 장관 임명장을 받자마자 달려간 곳은 한국노총이었다. 이 장관은 “조만간 민주노총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뜻 보기엔 지난 김영주 장관 때와 행보가 엇비슷하다. 하지만 고용부 안팎에선 “이 장관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노동계를 달래려는 행보”로 본다.

대신 이 장관은 취임사에서 ‘노동 존중 사회’를 위해선 ‘공정하고 대등한 노사관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동계에도 사용자와 대등한 경제 주체로서 책임과 의무를 이행토록 주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 장관은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20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 노조원이 취임 준비를 위해 이 장관이 출근하던 서울고용노동청의 4층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간 데 대해서다. 고용부는 곧바로 이를 ‘불법 점거 농성’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퇴거를 요청했다. 현 정부 들어 각종 파업이나 농성에 대해 합법인지, 불법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던 예전과 대조적이다. 고용부는 다만 불법 행위는 법대로 처리하되 고용부의 고유 업무인 조정과 중재는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책의 효과를 높이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추석 연휴 기간에 벌어진 포스코의 노사갈등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경찰이 포스코 연수원에 침입해 문서를 탈취한 혐의로 금속노조 포스코 지회 조합원을 조사 중이다. 문서 탈취 혐의로 노조원이 경찰에 검거된 다음 날 정의당이 이 문건을 공개하며 ‘노조파괴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곧바로 근로감독에 들어가던 이전과 대비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장관의 청문회 답변이나 취임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처하는 태도를 보면 원칙을 지키면서 노사자율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노동존중을 실현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장관의 취임사를 보면 조직된 노동자보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미조직 노동자와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법·제도 등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로 풀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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