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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9월 506억 달러 깜짝 수출…그뒤엔 산업부 전화돌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05억8000만 달러(약 56조원). 예상을 뛰어넘은 이 9월 수출 실적의 이면에는 산업부 수출 담당 부서의 전화 ‘독려’(?)가 숨어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 담당자들은 몇 개월 전부터 수출 상위 30곳의 업체 명단을 추렸다. 그리고 일일이 수출 기업에 전화를 걸었다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9월에 추석 연휴가 껴서 조업일수가 모자라다. 재고 물량 등을 적절히 조치해 수출 액수를 맞춰 줬으면 한다.”

수출 일정이 유동적인 제품도 있지만, 석유화학 제품 등은 수출 2개월 전부터는 일정을 바꾸기 힘들다. 그래서 일찌감치 연락을 돌렸다. 산업부 관계자는 “손 놓고 있었으면 492억 달러로 끝났을 게 전화 독려의 힘으로 500억 달러를 넘겼다”고 토로했다. 이 전화가 수출액 증가에 결정적 기여를 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업들은 정부 관계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의 ‘무게’를 절감했을 것이다.

뒷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김현종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왜  이례적으로 직접 정례 수출 브리핑에 나섰는지 이해가 갔다. 김 본부장은 말미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수출 활성화를 위해 애쓰는 기업인께 감사드린다.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하는 기업인은 애국자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말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가 아니었다.

수출 독려 과정엔 복병도 있었다.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어려워진 게 우리 수출에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고 했다. ‘적절하게’ 수출 물량 시기 조절이 가능한 국내 선사와 달리, 외국 선사는 정부 인사가 아무리 전화를 돌린들 일정을 바꿔줄 턱이 없다.

9월 ‘깔딱고개’를 넘었지만 근본적인 숙제가 남아 있다. 수출의 반도체 편중(9월 24.6%)이다. 특히 중국은 우리가 수출한 반도체(124억 달러)의 28.4%를 사들였다. 반도체 강국이 된 중국이 한국산을 찾지 않는 날, 저만큼의 수출이 날아갈 수 있다.

월 500억 달러 숫자 맞추기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이다. 진짜 할 일은 따로 있다. 수출 지역ㆍ품목 다변화부터 해야 한다. 언제까지 ‘경제개발 계획 시대’ 스타일의 전화 돌리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유진 경제정책팀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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