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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카풀 저지 나선 택시업계…정부는 중재안 만들고 왜 묵히고만 있나

중앙일보

입력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를 내놓으면 우리는 앞으로 카카오 택시 콜을 거부하겠다."(서울택시조합)

"카풀 영업을 허용하면 택시 기사와 가족 100만명 생계가 위험해진다."(경기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모빌리티 사옥 앞.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4개 택시 노조 단체에 속한 택시 기사 500여명이 카카오가 준비하고 있는 카풀 서비스를 규탄하는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한시간 넘게 "택시 업계를 박살내는 카카오를 박살내자"는 구호를 외쳤다. 택시 단체들은 오는 11일에 2차 집회를, 18일 광화문에서 3만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모빌리티 사옥 앞에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단체 4곳 관계자들이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선영 기자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모빌리티 사옥 앞에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단체 4곳 관계자들이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선영 기자

현행 운수법에서 출퇴근 시간 외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카풀 서비스를 놓고 택시 업계와 카풀 기업들 간의 갈등이 곪고 있다. 택시업계는 "자가용 자동차의 유상 운송을 전면 금지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카풀 서비스 기업들은 "차량공유 서비스가 세계적인 추세인만큼 서비스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카풀 서비스를 두고 합법 논란이 일어난지 1년이 됐는데 갈등이 해결책을 찾기 보단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이해당사자들의 이견을 청취하고 갈등을 봉합해야할 정부가 사안을 해결하기는커녕 우유부단한 태도로 오히려 논란을 되레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시 단체들이 카풀 서비스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사들의 생존권 박탈이다.

4개 택시 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교통 혼잡 해소 등의 특별한 목적에만 허용된 카풀 서비스에 정보기술(IT) 대기업이 나서는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택시 업계의 주장은 이렇다. 만약 카풀 운전자 200만명이 하루 최대 2회 운행하면(가동률 80%로 가정) 택시 하루 총 운행 실적(538만 건)의 약 59%를 카풀 서비스가 잠식해버린다는 것이다. 4개 단체는 지난달 말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렇게 되면 택시 업계에는 하루에 178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해 택시 산업은 죽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모빌리티 사옥 앞에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단체 4곳 관계자들이 카풀 서비스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참가자들이 발표한 성명서 중 일부. 하선영 기자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모빌리티 사옥 앞에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단체 4곳 관계자들이 카풀 서비스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참가자들이 발표한 성명서 중 일부. 하선영 기자

그러나 카풀 업체들 주장은 다르다. 김길래 한국카풀운전자연맹 회장은 "현재 국내 카풀 운전자 수가 5만명이 안되는데 운전자를 200만명으로 가정한 것은 상식에 벗어난 추정"라며 "출퇴근 시간에만 카풀을 허용하는데 전체 택시 영업의 59%를 잠식한다는 것도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이렇게 엇갈리는 주장 사이에서 이해 관계자들의 눈치만 보는 중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승차 공유에 대한 정의, 카풀 운영 횟수 등을 정의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교통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활성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국토부가 운전자 한 명당 카풀 운전을 2회까지 허용하는 방안을 포함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발표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신윤근 국토부 신교통개발과장은 "갈등이 첨예한데다 설상가상 국회에서 카풀 관련 금지법까지 발의됐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의견을 들어봐야할 것 같다"며 "최대한 양쪽 입장을 모두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택시 업계는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 등이 발의한 '유료 카풀 금지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국회에서 카풀 금지법이 통과되면 카풀을 일부 허용하려고 했던 국토부의 방안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는 이해 관계자들은 물론 국회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신 과장은 "행정 환경이 예전과 많이 바뀌어 이런 갈등 상황에서는 정부도 '원오브뎀'에 불과하다"며 "부동산 정책처럼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발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 않냐"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쪽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안이 나올 수 없는데 정부가 시간만 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부는 지난해 11월 서울시와 함께 카풀 앱 풀러스가 운수법을 위반했다며 고발한 이후로 어떠한 입장도 발표한 적이 없다. 논란이 발생한 지 일 년 가까이 됐는데 주무부처의 수장인 김현미 장관도 카풀 논란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 한 번도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 의지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다. 이쯤 되면 정부가 눈치를 보면서 카풀 논란을 방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더는 갈팡질팡만 하지 말고 택시·카풀 등 교통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의견도 청취해야 한다. 지난달 '블라인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56%는 "카풀 서비스를 24시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34%는 "출퇴근 시간에 허용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성인 10명 중 9명이 카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하선영 산업팀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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