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죽여 하며 3~4명 호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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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후보 지지 유세에 나섰다가 지충호씨로부터 피습당한 뒤 상처 부위를 손으로 감싼 채 행사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아래 사진은 한나라당 관계자와 지지자들이 박 대표를 가해한 지씨를 제지하며 붙잡고 있는 장면. [CBS 노컷뉴스 제공]

'근혜님의 쾌유를 빕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지지자들이 21일 서울광장에서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또한 일부 지지자는 서대문경찰서 앞에서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표가 사건 현장인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에 도착한 것은 20일 오후 7시20분쯤이었다. 15분 전에 도착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연설을 마친 상태였다. 길 건너편에 차를 세운 박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부터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기 시작했다.

수행비서의 안내에 따라 인파를 뚫고 박 대표가 유세차량에 닿는 데는 그로부터 5분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차량 계단에 첫발을 딛는 순간 지충호씨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칼로 박 대표의 오른쪽 뺨을 강하게 내리그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씨는 이미 유세차량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

피습 직전 박 대표와 악수를 했던 권영진 서울시장 후보 비서실장은 "(지씨가 칼로 그은 뒤) 박 대표는 화들짝 놀라 주춤 물러났고, 유세 사회자는 '(지씨를) 잡아라'라고 외쳤다"며 "지씨는 10m 정도를 달아났지만, 옆에 있던 당 비서진과 청중이 합세해 지씨를 쓰러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씨는 잡히기 전 '박근혜 죽어라'고 외치기도 했다"며 "거의 동시에 난동을 부린 박종렬씨도 그 순간 시민들이 제압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가 계단에 오르도록 부축했던 또 다른 오세훈 후보 캠프 관계자는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처음에는 칼도 보지 못했다"며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박 대표의 귀를 잡아당기는 줄 알았다"고 전했다. 칼이 강하게 살을 파고들었단 소리다. 그는 또 "박씨는 주먹을 휘두르고 유세용 마이크를 집어던졌고, 주먹을 휘두르며 욕설도 퍼부었다"고 증언했다. 엄호성 전략기획본부장은 "지씨가 칼을 그을 때 '죽여! 죽여!'라고 했고 그때 뒤에 3~4명이 '박근혜 죽여'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경찰이 출동해 지씨와 박씨를 연행해 간 이후 한나라당 유정복 대표비서실장은 현장에서 범행에 사용된 칼을 수거했다. 문방구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소위 '커터 칼'로 칼날의 길이는 15㎝ 정도였다. 유 실장은 "이 칼을 서울경찰청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사건 직후 박 대표는 승용차를 타고 세브란스병원으로 가 오후 9시15분쯤부터 봉합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2시간 동안 수술을 받은 박 대표는 오후 11시30분쯤 입원실로 옮겨졌다.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번 사건은 명백한 정치적 테러라고 본다"고 말했다.

◆ '박사모' 이틀째 촛불집회=박 대표 지지자들의 모임인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 회원들은 사건 소식을 접한 20일 밤부터 관할 서대문경찰서와 세브란스병원 앞에 몰려들었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늑장 출동 의혹과 관련해 경찰을 질타하고 사건의 명백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병원 앞에 모였던 박사모 회원 30여 명은 밤새 촛불을 켜 놓고 박 대표의 쾌유를 기원했다. 박사모는 21일에도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장소를 옮겨 또다시 촛불집회를 열었다. 회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7시30분부터 한 시간가량 열린 이 집회에서도 회원들은 "검찰과 경찰은 이번 정치테러의 배후를 밝혀내라"고 촉구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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