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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9단 "딸이 태어난 뒤로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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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9단이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K바둑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지석 9단이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K바둑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생애 최고의 날은 언제일까. 한국 바둑 랭킹 3위 김지석(29) 9단은 지난 17일을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날로 꼽았다. 2018년 9월 17일은 오후 12시쯤 딸이 태어났고, 오후 5시쯤 제1기 용성전에서 우승한 날이다. 그것도 동갑내기 라이벌 강동윤 9단을 꺾고 용성전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우승 상금 3000만원.

경사는 이어졌다. 이틀 뒤인 19일 김 9단은 제8회 SG배 페어바둑최강전 결승에서 오유진 6단과 짝을 이뤄 출전,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우승 상금 3000만원. 김지석 9단은 "딸이 태어난 이후로는 운이 많이 따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김지석 9단은 최근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17일 전까지만 해도 9월 성적은 2승 6패. 특히 중국의 롄샤오 9단에게 3연패(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2패, 중국 갑조리그에서 1패)를 당했다. 김지석 9단은 "출산과 관련해서 특별히 심적 동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패배하니 압박감을 느꼈다"며 "특히, 롄샤오와의 승부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한번 꼬이니까 계속 잘 안 풀리더라. 그래서 기분이 많이 안 좋았다"고 답했다.

국내 랭킹 3위 김지석 9단. 김 9단은 "딸이 행운을 가져다준 거 같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국내 랭킹 3위 김지석 9단. 김 9단은 "딸이 행운을 가져다준 거 같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그런데 딸의 탄생 이후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다. 17일 김 9단은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용성전 결승 최종국을 두기 위해 한국기원으로 향했다.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확인한 만큼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그런데 대국장으로 향하는 길에 승리에 대한 바람이 점점 커졌다.

김 9단은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던 만큼 정말 이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이기고 싶었던 판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원래 간절히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면 거의 패배하곤 했다. 이번엔 운 좋게 승리했고, 과거 세계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보다 더 기뻤다. 아이가 행운을 가져다준 거 같다"고 돌이켰다.

딸의 출생 날짜와 시간은 김지석 9단의 아버지가 좋은 때를 받아 정해주셨다. 아이가 3.9kg이라 자연 분만이 어려워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던 것. 김 9단 역시 태어날 때 4.4kg 우량아였다고 하니, 딸이 아버지를 닮은 듯하다. 김지석 9단은 "사람들이 딸을 보고 나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다만, 걱정되는 건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아주 힘들게 했다. 아이가 와이프를 닮아야 키우기 쉬울 텐데 벌써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가져다준 선물은 또 있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김 9단의 아버지가 손녀를 위해 금연을 단행하신 것이다. 김 9단은 "아버지가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셔서 걱정이 많았는데, 담배를 끊으셔서 너무 기쁘다. 이 또한 딸이 가져다준 커다란 선물"이라고 말했다.

김지석 9단은 올해 목표에 대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록 기자

김지석 9단은 올해 목표에 대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록 기자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나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좀 엄한 편이셨는데, 나는 딸에게 그렇게 못 할 거 같다. 부모 중 한 명은 자식에게 엄해야 한다고 하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벌써 '딸 바보' 같은 모습이다.

딸에게 향후 바둑을 가르칠 것이냐는 질문에는 "일단 가르쳐보긴 할 거 같다. 그래도 프로기사는 그다지 강요하지 않을 거 같다"라면서도 "만약 바둑에 가능성을 보이고 본인이 좋아한다면 프로기사를 해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SG배 페어바둑최강전 파트너인) 오유진 6단 정도면 당연히 프로기사를 시킬 거 같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출산 이후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느냐고 묻자 "시간이 지나면 점점 실감이 나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당장 가장의 무게보다는 아이가 자체로 무거워서 들어보니 팔이 아팠다"고 웃으며 답했다.

승부사로서의 부담감은 어떨까. 김 9단은 "30대가 된 이후로는 승부사로서 기회가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예전에는 패배하면 막연하게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조급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언제까지 승부사로 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잘 해보고 싶다. 올해 나에게 남은 세계대회인 춘란배에서 좋은 성적 내고 싶다"고 밝혔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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