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폭력추방 캠페인|고문수사 뿌리 뽑아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해 10월 19일의 국회내무위 국정감사는 매우 중대한 폭력을 고발하고 있었다.
『23일 동안 10차례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감옥생활2년10개월 동안 거의 죽으로 끼니를 때웠으며 정신분열의 가능성이 있다는 위기감을 스스로 느낄 정도였습니다.
개처럼, 짐승처럼 발가벗기운채 죽여달라고 외쳤던 정신적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증인으로 나온 전 민청련 의장 김근태씨가 털어놓은 처절한 고문의 실상은 권력기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의 한 단면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김씨는 수사관들이 자신을 준비된 각본 속에 짜 맞추려고 폭력을 통해 철저히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권력기관에 의한 폭력은 피의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목숨까지 앗아갔다.
밀실에서 온갖 고문을 견디지 못해 숨진 박종철군 사건 이후 속속 출간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변협 등의 자료집에는 많은 시국관련 인사들이 구타·물 고문·전기고문·성 고문 등 각종 고문 피해를 고발하고 있다. 형사사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권력기관의 폭력으로 인해 우리 나라는 엠네스티 국제위원회와 유엔 인권위원회에 위해 고문이 있는 국가로 지목된 지 이미 오래다.
공권력의 폭력-. 그것만큼 뿌리 깊고 잔인한 폭력도 없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형태인 고문은 권위주의적 정치집단의 통치수단이자 인간 말살행위로 지탄을 받고있으나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고문은 공포와 불안감을 확산시켜 반대자들을 침묵하게 하지만 박종철군 사건처럼 국민을 분노케 해 권력의 기반을 흔들어 놓은 전례를 우리는 갖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시대, 이제는 일제이후 끊임없이 반복 확산돼온 고문이라는 공권력의 불법 폭력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폭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권력이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인권 보장에 바탕을 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해 고문을 추방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다행히 정부는 최근 김근태씨 사건을 계기로 고문 행위를 5공 비리 차원에서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 그 동안 지탄의 대상이 되어온 치안본부 대공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시국사건 관련자들의 범법행위는 명백히 드러난 혐의에 대해서만 의법 초치해야 하며 대공부서가 시국사건을 처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1백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고문은 없어져야 한다』는 경찰 고위간부의 말은 권력기관의 폭력을 배제하려는 노력으로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검찰이 여론의 요구에 밀려 고문 수사에 나서는 등 정부가 아직도 폭력 추방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박원순 변호사는 『정부는 고발된 고문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 그리고 고문을 예방할 제도적 장치마련 등 가시적인 조치를 통해 고문 근절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변호사는 이와 함께 고문 퇴치를 위해서는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고 했다. 권인숙양·김근태씨의 경우처럼 피해자의 끈질긴 고발정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공동체적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경균 교수(서울대·보건사회학)는 『우리 사회에는 그 동안 군사정권이 정권유지수단으로 초법적인 인간성말살행위인 고문을 자행해왔다』고 지적하고 『고문이 있는 한 누구나 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아래 국민들이 공동체의식을 갖고 대처해야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