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신대륙 정복 ? 생태 습격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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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
앨프리드 크로스비 지음,
김기윤 옮김, 지식의숲,
424쪽, 19800원

'총, 균, 쇠'라는 역저가 있다.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진화생물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성쇠를 따져본 책이다. 다이아몬드는 서구의 오랜 이데올로기였던 백인의 우월성, 즉 인종주의적 시각을 거부했다. 특히 그는 지난 500년간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줬다. 유럽인의 신대륙 도착 이후 원주민 대다수가 질병과 전쟁 등으로 죽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는 일정 부분'총, 균, 쇠'의 '형님 뻘' 된다. 72년 초판이 나왔다. 출간 30년이 훨씬 지난 이 책을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유럽의 신대륙 정복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둘째, 사례가 풍부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무엇이 새로운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주로 정복자, 혹은 피정복자 입장에서 해석됐다.

한편으로는 유럽의 확장이요, 다른 편으로는 아메리카의 몰락이었다. 둘로 나뉘었던 세계의 통합이 부각됐거나, 총.칼을 앞세운 유럽의 잔인함이 강조됐다. 저자는 양자를 '콜럼버스의 교환'(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다)이란 용어로 수렴시킨다. 일방적 정복.굴복이 아닌 쌍방의 '교환'을 내세운다.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신대륙을 피를 물들인 유럽의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오해가 풀린다. 저자는 '유럽의 신대륙 습격사건'을 폭넓게 분석한다. 칼과 총이 아닌 세균.동물.식물 등 전방위 시각에서 신대륙 발견의 공과를 따지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힘도 쓰지 못하고 급속하게 무너진 이유를 정치.경제의 좁은 틀이 아닌 생물.환경의 넓은 틀로 돌아본다.

일례로 천연두. "인디언들은 물통의 물고기처럼 죽어갔다"는 표현처럼 구대륙의 질병에 면역력이 없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른바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유럽에서 건너온 말은 어떤가. 최초 적응기를 거쳐 숫자가 급속히 불어난 말은 신대륙 곳곳을 연결해주는 수단이자 유럽인의 확산을 떠받치는 지렛대였다. 이 밖에도 매독.폐렴.옥수수.감자.소.돼지 등 구세계와 신세계의 교환을 일러주는 사례가 줄을 잇는다. '하나 된 세계' 때문에 생명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경고와 함께….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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