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게 백두산은 결단의 장소…文대통령에게 왜 "같이 갑시다" 제안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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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백두산행을 제의한 배경엔 문 대통령의 등정 소원을 들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김 위원장에게도 백두산은 각별하다. 그는 2011년 집권 후 중대 결정을 내리는 시점마다 백두산과 인근 삼지연 지역을 찾아 고심하는 모습을 연출해왔다. 김 위원장에게 백두산은 ‘결단의 장소’인 셈이다. 그런 곳을 문 대통령과 함께, 북ㆍ미 비핵화 협상의 중대 기로에서 찾는다는 것은 단순한 산행(山行) 이상의 의미다.

김정은이 최근 백두산에 올랐다고 북한 매체들이 12월9일 일제히 공개한 사진. 김정은은 장성택 숙청 등 중대 결심을 앞두고 백두산 일대를 찾곤 했다. 김 위원장은 20일엔 문 대통령과 함께 백두산에 오른다. [노동신문]

김정은이 최근 백두산에 올랐다고 북한 매체들이 12월9일 일제히 공개한 사진. 김정은은 장성택 숙청 등 중대 결심을 앞두고 백두산 일대를 찾곤 했다. 김 위원장은 20일엔 문 대통령과 함께 백두산에 오른다. [노동신문]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19일 이번 백두산 일정에 대해 “평양에 와서 제안을 받은 것”이라며 “(제안을을 해온 것은) 어제 오늘(18~19일) 사이”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전격 제안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러나 관련 작업을 그전부터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8일 이미 일본 매체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를 인용해 백두산 일대 대규모 도로 정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백두산 방문 가능성을 제기했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백두산은 북한에서 일명 ‘백두혈통’으로 통칭되는 김일성 일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 유격 활동을 체제의 당위성으로 선전하는데, 이 항일 활동이 백두산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백두산을 ‘혁명의 성산(聖山)’으로 부르며 신성시하는 배경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지가 실제로는 러시아 하바로브스크인데도 삼지연군에 속한 백두산 밀영(密營, 유격대 등이 숨어든 깊숙한 산악지대)라는 주장도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결단의 순간을 전후해 백두산과 삼지연 일대를 찾은 것은 2013년과 2016년이 대표적이다. 2013년엔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을 앞두고, 2016년엔 5차 핵실험을 한 직후 백두산을 찾았다. 지난해 12월 8일께엔 영하 26도의 엄동설한에 백두산을 찾았는데, 약 3주 후엔 신년사를 통해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며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11월 말 백두산 지구인 양강도 삼지연군을 찾아 김일성 동상을 둘러봤다. 보름 뒤 이뤄진 장성택 처형을 논의한 자리라는 관측이 나왔고, ‘삼지연 8인 그룹’으로 불렸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11월 말 백두산 지구인 양강도 삼지연군을 찾아 김일성 동상을 둘러봤다. 보름 뒤 이뤄진 장성택 처형을 논의한 자리라는 관측이 나왔고, ‘삼지연 8인 그룹’으로 불렸다. [노동신문]

 김 위원장은 또 백두산과 삼지연 일대 경제 개발을 주요 역점 사업으로 삼고 애정을 쏟고 있다. 지난 8월엔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직접 찾아 현지지도를 하면서 “혁명의 고향집이 자리잡은 삼지연군을 희한한 신간 문화도시로 훌륭히 꾸려야 한다”며 “천지개벽의 불바람이 세차게 일어번지고 있다”고 독려했다. 김 위원장에겐 자신의 경제개발 의지도 강조할 수 있는 일석이조 일정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2018.9.19.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2018.9.19.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도 오랜 기간 백두산 등정을 소원해왔다.  지난 4ㆍ27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서 문 대통령은 “내가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는 것”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그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9일 기자들에게 “북측에서 (문 대통령의) 바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제안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백두산 등정 후 삼지연에서 환송행사까지 마친 뒤 삼지연공항에서 서울로 바로 귀환한다.
평양=공동취재단,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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