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안 피우는 사람 혐연권 보호해 주자"|「금연법」 제정 추진운동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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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건강을 위해 비장한 각오로 담배를 끊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새해를 맞아 금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끝내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애연가들이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비흡연자의 혐연권 존중과 준법정신의 차원에서도 금연을 심각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였다.
대한의학협회와 한국소비자연맹을 주축으로 지난 3월 발족된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공공장소에서의 금연과 처벌규정을 담은 금연법(시안)을 마련, 내년에 의원 입법을 추진키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각 직장에서도 금연운동을 한층 더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법안은 지금까지 지하철 구내·공연장 등에 국한됐던 공식 금연 구역을 실내 공공장소·공공 건 물·작업장·음식점 등으로 대폭 늘리고 위반시 5천∼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인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일순 교수는 『담배는 1개비당 5분30초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등 흡연자 자신의 생명을 태우기도 하지만 주위사람들에게는 이유 없는 피해를 준다』고 지적하고 이 협의회는 운동 5차 연도인 내년에는 금연법의 제정에 1차적인 목표를 두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내의 각 직장·단체 및 외국의 금연운동단체와 협력, 조직적·체계적인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흡연의 위해에 대한 계몽에도 중점을 둘 계획이라는 것.
이에 발맞춰 상당수 기업들도 새해벽두부터 여직원회 ·인사담당부서 등을 중심으로 88올림픽 이후 느슨해진 금연운동의 고삐를 죌 계획이다.
지난 6월부터 금연포스터·배지부착, 은단의 무료배부 등을 통해 「자율적인 금연」운동을 펼쳐온 제일제당 여직원회는 인사부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오전·오후 각2시간의 금연, 별도 흡연실의 확대 등을 추진하면서 금연운동을 활성화할 예정·쌍룡정유는 금연 비디오 프로그램의 다양화, 신입사원 금연교육 등으로 사무실과 공장의 금연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이밖에도 한미은행을 비롯, 힐튼호텔·코오롱상사·대한항공·한국무역 진흥공사·피어리스·강남성모 병원 등 많은 기업·단체에서도 금연운동을 나름대로 확대,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이처럼 담배연기를 마시지 않을 권리가 활발히 주장되기 시작한 것은 헌법31조에 보장된 환경권과 흡연 특히 간접흡연의 해독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톨릭 의대 맹광호 교수(예방의학)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흡연은 위암·간암·폐암·기관지암 등 14종의 암을 비롯, ▲뇌혈관 질환 ▲고혈압성 질환 ▲심장 질환 ▲간경변 등 약 30가지의 각종 질환을 초래하거나 노화현상을 촉진, 매년 2만3천여 명을 숨지게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연세대 의대 서일교수(예방의학)는 이밖에도 담배는 남자의 정자의 양과 운동속도를 비흡연자보다 현저히 줄어들게 하는 등 남자의 생식기능에 부작용을 줄 우려가 있음이 최근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보고서에서 밝혀졌다고 전했다.
임산부의 흡연은 체중 2.5kg 이하의 조산아를 낳을 확률을 2배로 높이고 자연유산, 임신합병증, 태아의 발육장애, 선천성 기형 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간접흡연의 해독도 결코 만만치 않다.
생담배의 연기에는 마셨다 내뿜는 담배보다 암모니아가 20배, 일산화탄소 5배, 타르 3.5배, 니코틴이 3배나 더 많기 때문에 비흡연자들은 흡연자보다 더 독한 담배연기(화학물질 4천종 함유)를 마셔야 한다. 또 흡연자를 부모로 둔 어린이들은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할 확률이 70%, 감기·기관지염·폐렴 등의 질환에 걸릴 확률이 2배나 더 높은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야한다. <김영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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