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야드 너머로 펑펑 "나이 날려 버리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제 별명이 '드라이 싱'입니다."

첫 홀 드라이버 티샷을 보고 동반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자 가천 길재단 이길여(74) 회장이 한마디한다. 이 회장과 얼마 전 안양베네스트 골프장에서 오랜만에 함께 운동을 했다. 드라이브샷이 완전히 싱글 수준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드라이 싱'이란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210야드쯤 나간다. 체중 이동, 허리 돌리기, 파워 임팩트 그리고 피니시까지 한 동작으로 깔끔하게 이어진다.

"올해 연세가 얼마나 되셨죠?"

"숙녀 나이를 물어보면 곤란하죠."

"의사는 몇 년도에 되셨나요?"

"서울대 의대 졸업하고 의사 된 게 1957년인데 그때 윤 교수는 뭐하고 있었나요?"

"아, 저야 그때 좀 놀았죠."

나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니까 정말 '놀고 있을 때'였다.

사실 겉모습만 봐서는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도 없다. 빨간 장갑을 양손에 끼고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른 데다가 멋진 선글라스까지 꼈으니 마치 40대 조종사 같다. 정말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분이다.

"그때는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 죽는 사람이 많았어요. 특히 부인병은 세균성 질환이 많아 항생제만 투여해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 정말 안타까웠죠."

그녀는 미국 유학 중에 좋은 병원에서 붙잡는 걸 뿌리치고 귀국해 병원을 열었다. 당시 환자 중에는 병원비가 없어 야반도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병원은 미리 보증금을 받고 입원을 시킬 때였다.

"나는 병원에다 '보증금 없어도 입원이 됩니다'라 써 붙여 놓고 환자를 받았어요, 도망가면 그냥 내버려 두고 외상 하겠다면 외상 받아주고 돈 내는 환자에게는 받는 식이었죠."

그가 미국에서 귀국할 때 결심한 것이 '박애.봉사.애국'이라고 했다.

"장타의 비결이 뭐죠?"

"연습해야죠,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이 있나요, 새벽에 연습장에 나가 맹렬히 연습합니다."

그동안 홀인원을 한 번 했고 최저타는 78타라고 한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원래 운동을 다 좋아합니다. 어려서는 달리기를 잘했고 승마도 좋아합니다. 몸이 건강해야 머리도 잘 돌아가죠. 골프장에 오면 꽃구경도 하고 신나게 걷고 젊은 사람들 하고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즐겁잖아요."

사실 이날 제일 행복한 사람은 캐디였을 것이다. 이 회장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캐디의 조그만 수고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베풀고 베푸는 사람이었다.

오늘의 원포인트 레슨=드라이버 비거리를 결코 포기하지 마라.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 경영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