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연구부정,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에 관한 검찰의 수사 보고서는 부정직한 연구윤리가 문제의 핵심임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17일 서울대는 내부고발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의혹이 제기된 연구 성과에 대한 사후 검증기구로서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설치해 황우석 교수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연구 부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세부 방안들을 발표했다.

모든 연구자는 언제나 유혹에 시달린다. 그 유혹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조금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해 헛된 시간을 낭비하는 무해한 것일 수도 있고, 연구비를 사적(私的) 용도로 전용하는 일반적인 탈선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없는 연구 성과를 날조.조작하거나 남의 연구 성과를 슬쩍하는 표절과 같이 '중대한 연구 부정'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오직 1등만이 모든 영예를 차지하는 '승자 독점의 원칙'이라는 학문세계의 특징은 날조나 조작, 표절 같은 중대한 연구 부정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진원지가 된다.

연구 부정은 모든 학문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연구 부정의 구체적 형태는 학문에 따라 다르다. 법학의 경우에는 판례를 분석하고 다른 사람들의 학설을 소개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표절이 문제가 된다. 한편 공개된 데이터를 주로 이용하는 경제학의 경우에는 데이터의 제2차적 가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료 조작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통제된 실험을 통해 1차 자료를 직접 생산해 낼 수 있는 자연과학 쪽에 있다. 실험을 복원하지 않고는 자료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생물학이다. 살아 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실험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런 이유 때문에 생물학 실험은 종종 '셰프(chef)만이 만들 수 있는 일류 요리'에 비유된다. 논문에 소개된 레시피(recipe)가 아무리 자세해도 손맛을 가지지 않은 연구자는 기존 실험의 복원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논문만 보고 다른 과학자의 실험 성과를 재확인한다는 것은 때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후속 연구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은 거장(巨匠)의 실험실에 합류해 하루빨리 그 밑에서 '요리의 비법'을 전수받는 것이다. 그 결과 소위 '잘나가는' 실험실은 연구자로 넘쳐나게 된다.

연구자의 집중은 연구 부정을 확대 재생산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잘나가는 실험실은 밀려드는 연구자를 어떻게든 먹여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열심히 연구비를 신청해야 하고 좋은 연구 성과도 발표해야 한다. 이것은 또다시 새로운 연구자들이 실험실 문을 두드리도록 만들고, 그에 따라 또 새로운 연구비가 필요해진다. 결국 연구비가 또 다른 연구비를 부르는 악순환이 시작되고 이때부터 이 실험실은 '멈추면 쓰러지는 외발 자전거'가 된다. 일단 실험실이 외발 자전거를 타게 되면 연구 부정에 몸을 내맡기는 것은 그야말로 마음먹기 하나에 달렸을 뿐이다.

현대의 연구는 수많은 공동 연구자의 성과를 종합하고, 많은 연구가 복원 그 자체를 매우 어렵게 하는 '예술'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백남준의 예술품에 비견될 수 있다. 이런 예술품을 척 보고 진짜와 사이비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연구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회의 자정(自淨) 노력이나 후속 연구에 모든 것을 미루기보다 내부 고발에 근거한 사후적 검증 장치와 사전적 예방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로부터 시작된 이런 자정 노력이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원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