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앙리 …'2002년 지단'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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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가 후반 29분 코너킥을 차기 직전 쪼그려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지단이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덴마크전에서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모습. [파리 로이터=연합뉴스, 중앙포토]

1-0으로 이기고 있던 후반 29분 아스널(잉글랜드)이 코너킥을 얻었다. 코너킥 지점에 볼을 갖다놓은 티에리 앙리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전반 18분 골키퍼 옌스 레만이 퇴장당해 10명이 싸운 아스널 선수들의 체력은 고갈 직전이었다.

2분 뒤, FC 바르셀로나(스페인)의 사뮈엘 에토오가 챔피언스리그 10경기 무실점을 자랑하던 아스널 골문에 동점골을 꽂아넣었다. 다시 5분 뒤 벨레티가 역전골을 터뜨렸다. 아스널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18일 오전(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생드니 경기장에서 열린 2005~2006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앙리는 아스널의 공격 첨병으로 나섰다. 앙리는 자신의 고향에서, 아스널의 사상 첫 유럽 클럽 정상을 이끌고 싶었다.

그러나 앙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회 연속 득점왕에 등극한 그 위용이 아니었다. 전반 3분과 후반 25분, 골키퍼와 맞선 절호의 기회에서 앙리는 득점하지 못했다. 누적된 피로는 앙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는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32경기(2817분)를 뛰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33경기.2091분)보다 800분 가까이 더 뛴 것이다. 게다가 앙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2경기에 출장했다.

앙리는 경기 후 "판정이 불공정했다"며 심판을 탓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골 찬스를 살리지 못한 앙리를 탓했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피로가 그의 특별한 재능을 앗아가버렸다"고 평했다.

앙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독일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에 합류한다. 이 모습은 4년 전 2002 한.일 월드컵에 나섰던 지네딘 지단(프랑스)을 연상시킨다.

바르셀로나 14년 만에 정상 탈환
아스널을 2-1로 꺾고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우승컵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파리 AP=연합뉴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소속의 지단은 2002년 5월 15일 바이엘 레버쿠젠(독일)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섰다. 그는 1-1 동점에서 그림 같은 왼발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5월 22일 프랑스 대표팀의 일본 캠프에 합류한 지단은 26일 수원에서 열린 한국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허벅지 근육을 다친다. 겹친 피로와 김남일의 거친 태클이 그를 쓰러뜨렸다. 결국 지단은 5월 31일 개막전(세네갈에 0-1패)을 포함한 예선 두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덴마크와의 최종전에 출전했지만 팀은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탈락했다.

앙리는 지단에 비해 보름 정도 더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가 맹수 같은 날카로움을 되찾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G조 2차전(6월 19일)에서 프랑스와 맞붙는 한국이 내심 바라는 바이겠지만….

◆ 바르셀로나 우승=바르셀로나는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가 감독을 맡았던 1991~92시즌 이후 14년 만에 유럽 클럽 축구 정상에 올랐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확정한 바르셀로나는 겹경사를 맞았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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